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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나도 가족들과 여행 가고 싶어요”- 양영석(사회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4-02-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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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외국인 여행객이 국내에서 쓴 경비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이 35억3000여만 달러(3조8200여억 원) 더 많았다.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이어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재정 운용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규모다.

    정부는 이 같은 관광수지 적자를 해소하고자 봄철에는 5월 1일부터 11일까지, 가을철은 9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각각 11일씩 관광주간으로 정해 이 기간에 국내여행을 할 경우 철도, 숙박요금을 할인해주고 20만 원을 본인 부담으로 쓸 경우 1000명 이하 중소·중견기업 근로자 3500명에게 20만 원(정부·기업 각 10만 원)의 휴가비를 지급하겠다는 국내관광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이 국내관광 활성화 방안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지인은 거의 매일 잔업하고 매달 일요일 이틀만 쉬면서 일하지만 한 달 월급 실수령액은 200만 원 안팎이다.

    “한가롭게 관광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근로자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라며 말을 꺼낸 그는 “나도 가족들과 여행 가고 싶어요. 하지만 여유가 없고 돈이 없어 못 가요. 잔업하지 않고 휴일에 쉬고 휴가철에 남들처럼 휴가 가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답니다. 정부의 관광 활성화 방안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근로자의 가슴에 못을 박은 거예요”라고 했다.

    이어진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교육비 문제와 천문학적인 수준의 가계부채가 서민 가정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는데 정부는 관광 내수 진작을 한답시고 국내관광 활성화 방안이나 내놓아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토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근로자에게도 휴가철이 아닌 기간에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 해 20일씩 관광을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영자도 이 정책에 부정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판에 장기 휴가에다 휴가비까지 주면서 근로자에게 국내여행하라고 독려할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휴가가 곧바로 생산 차질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차휴가 사용도 꺼리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로자가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중소기업 54%에 불과했다.

    더욱이 정부가 정한 관광주간은 중·고교생들이 1,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거나 코앞에 둔 시기다. 상급학교 진학에 내신성적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요즘 현실을 볼 때 시험을 앞둔 자녀를 데리고 또는 놔두고 여행을 떠날 간 큰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국내에 잡아두고 국내관광을 활성화해 관광경쟁력 15위권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 등 관련 부처들 간에 재원 마련, 수요 예측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 치밀한 검토는 물론, 사전 협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처지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뜬금없이 국내관광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정책 입안자들의 무신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백성들이 먹을 빵이 없다는 말을 듣자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Qu’ils mangent de la brioche!)”라는 말을 무감각하게 내뱉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연상될 정도다.

    국민 다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이라면 재고하든지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양영석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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