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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3·1운동의 주역들과 집터의 기운

  • 기사입력 : 2019-03-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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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괴산군에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인한 치욕을 참지 못하고 자결 순국한 금산군수(錦山郡守) 일완(一阮) ‘홍범식(1871~1910) 선생 고택’인 동시에, 홍범식의 장남이며 근대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1888~1968) 선생 생가’가 있다.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택은 정남향으로 지어졌으며,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를 이루게 하고 내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해 최선의 공간 확보와 효율적인 동선 확보를 위한 흔적이 돋보였다. 전체적으로는 건물의 중문(中門)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안채를, 서쪽에는 사랑채를 배치했으며 사랑채 앞에 행랑채를 두었다.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린 홍명희는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북도에서는 처음으로 괴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돼 옥살이를 했으며, 조선시대 서민의 생활양식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기 전의 집 앞 공간은 음택(陰宅·무덤)의 경우, 순전(脣前)이라 하여 ‘무덤 앞에 닦아놓은 평평한 땅’을 의미하며 양택(陽宅·건물)의 경우, ‘논과 밭’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덤과 건물 앞의 땅은 대체로 넓어야 재물이 모이게 된다. 특히 무덤 앞 공간(절을 하는 곳)이 극히 좁은 곳의 후손이 번창하는 것을 필자는 별로 보지 못했다. 홍범식 선생 고택의 집 앞 공간은 꽤 넓은 편이며 주산(뒷산)은 마치 고택과 한 몸인 것처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유정하면서 고택을 수호하듯 감싸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고택의 앞쪽에 동진천이 있으며 주산의 중심 맥(脈)이 들어오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배치와 좌청룡(좌측 산)과 우백호(우측 산)가 고택을 둘러싸고 있지는 않지만 좌우측에서 치는 흉풍과 살기(殺氣)를 막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도로보다 낮은 집’이어서 집안에 찬 공기가 항상 감돌아 자칫 건강을 해치기 쉬운 집이었다.

    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흉풍은 담장에 닿으면서 생기(生氣)있는 바람으로 바뀌어 사랑채와 안채로 들어가므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했다. 안채는 ‘ㅁ’자형 구조로 돼 있어 ‘一’자형 구조인 사랑채보다 사생활 보호가 더 용이할 뿐만 아니라 흉한 기운을 잘 막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필자가 실제 체크한 결과, 사랑채와 안채 영역은 ‘힘찬 산줄기(생기룡)’의 연장선상에 있어 터의 기운이 대단히 좋았지만 장독대 우측의 광채와 뒤주가 있는 곳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만일 필자에게 자연과 가장 하나 된 고택을 꼽으라면 ‘홍범식 고택’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청주시 청원구에는 천도교 지도자(동학의 제3대 교주)로 3·1독립선언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1861~1922) 선생의 ‘생가지’가 있다. 1908년 교주 자리에서 물러난 손병희는 3·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해 독립선언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당시에는 사람 행세할 수 없던 서자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종교지도자로 교육가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민족대표 33인의 중심에 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큰 기여를 했다. 선생의 유허지는 충청대로에서 약간 떨어진 소로(小路)인 의암로가 환포(環抱·사방으로 둘러쌈)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작은 도로가 둘러싼 곳은 전반적으로 터의 기운이 좋음을 뜻한다.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초가집으로 원형을 복원해 보존하고 있었다. 생가의 지기(地氣·땅의 기운)는 득(得)도 주지 않지만 해(害)도 주지 않는 보통의 기운을 가진 터였으며, 사당과 동재, 서재도 그러했다. 하지만 의암정(義庵亭)을 포함한 주변의 땅기운은 유허지 중에 가장 좋아서 생가의 위치를 그곳으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지기가 좋아도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보통의 지기가 있는 곳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선생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선의 노력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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