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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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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예술과 이념- 임창연(시인·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 기사입력 : 2021-07-15 20: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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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의 학살’은 파블로 피카소가 1951년에 그린 유채화이다. 이 작품은 완성된 지 70년 만에 국내에서 첫 전시 중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개입을 격렬하게 비난해 온 프랑스 공산당이 피카소에게 반미 선전을 위한 작품을 의뢰했다. 이 작품은 1951년 5월 파리의 살롱 드메(Salon de mai)에서 처음으로 전시됐다. 그러나 용감하게 저항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공산당에게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 피카소의 작품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더군다나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원에 입당했던 피카소는 이 비평으로 말미암아 공산당과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보다 먼저 1937년에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가 있다. 1937년 4월 26일 오후 4시 30분경, 바스코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히틀러가 프랑코를 돕기 위해 최신 기종의 전투기를 보내어 엄청난 양의 폭탄을 무차별 투하했다. 이 사건으로 게르니카는 이틀 내내 불탔고 15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고 한다.

    ‘게르니카’가 외국의 세력이 동원된 스페인 내전을 그린 작품이라면 ‘한국에서의 학살’ 역시 소련·중공의 공산당과 미국·유엔군의 확대전으로 치러진 내전이 배경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학살’이 정작 프랑스 공산당에게는 홀대를 받았고, 한국에서는 반미의 작품으로 분류돼 국내 전시가 금지된 목록에 올랐었던 작품이 됐다. 피카소 자신은 1953년 인터뷰에서 “전쟁의 장면을 그릴 때, 어느 나라의 군복, 군모를 생각하며 그린 적이 없다”라고 답함으로써 특정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와 공산당에 가입함으로 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관련한 이력이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술의 가치가 단지 이념의 스펙트럼에 함몰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념을 뛰어넘어 미래의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임창연(시인·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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