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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씨네아트 리좀의 휴관과 그들 각자의 영화관- 손상민(극작가)

  • 기사입력 : 2021-08-19 20: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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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언니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서 본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1988)를 꼽는다.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이건주가 별똥왕자로 분한 이 엉성한 영화는 90분 동안 내 혼을 쏙 빼놓았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첫 여름방학에 본 생애 첫 영화였다.

    ‘밤밤밤 밤밤밤’으로 토요일 밤마다 내 가슴을 뛰게 했던 <토요명화>도 좋았지만, 영화관에서 본 ‘영화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하지만 빈곤한 주머니사정으로 더는 영화관을 찾지 못했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지역 문화회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아주 저렴하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당시 봤던 <101번째 프로포즈>(1993)는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는데, 한국영화를 ‘시시하다’고 여겼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런 내 편견을 산산이 깨버린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쉬리>(1998)였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영화를 보고 나서 묘한 흥분감에 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보러 다녔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는 서울극장에서 손을 꼭 잡고 영화를 봤는데, 당최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 한 시, 얹혀 살던 친척집 문이 잠겨 동대문까지 걸어가서 본 심야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2000)도 잊을 수 없다.

    졸업 후 몇 해 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다면 영화라도 실컷 보자고 시작한 영화이론전공 석사과정 중 나는 또 다른 영화의 세계에 입문했다. 바로 예술영화상영관에서 보는 독립예술영화와의 만남이었다.

    지금은 이전한 서울아트시네마와 필름포럼이 낙원상가 4층 예전 허리우드 극장에 있을 때 초대형 스크린으로 본 네오리얼리즘 감독 기획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비슷한 시기 필름포럼 임재철 대표가 만든 영화비평모임에도 들어가 대학원 시절 내내 시네필들과 영화를 보고 밤새 술을 마시며 영화와 인생을 논했던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기억은 영화관의 기억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를 떠올리면 함께 했던 사람들, 머물렀던 공간, 불이 꺼졌을 때의 두근거림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밀려온다.

    <씨네아트 리좀>이 지난 5일부터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2014년 거제아트시네마를 포함한 전국 10여 개 예술영화전용관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2015년 12월 23일 개관한, 현존하는 경남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이다.

    나는 파견예술인으로 올해 세 번째 씨네아트 리좀을 방문하고 있다. 가까이서 본 씨네아트 리좀은 애초 예상과는 크게 달랐다. 처음에는 경남 유일 예술영화전용관이 민간의 자력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음에는 대표가 매달 몇 백만 원씩 자비를 쏟아가며 무보수로 버텨오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했다.

    2020년 2월 경기도는 독립영화전용상영관을 5개로 늘리고 미술관 등을 활용한 공공상영관도 40개까지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두 코로나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다. 창원시가 코로나로 관객 75%가 준 씨네아트 리좀의 DCP전용 영사기 임대료 지원을 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장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치가 지켜져야 할 때 우리는 그 역할을 공공에 기대한다. 공공이 제 역할을 잊지 않기를, 누군가의 인생극장이 될지 모를 우리들의 ‘시네마천국’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손상민(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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