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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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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책과 장서인(藏書印)-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2-12-12 19: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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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나 글씨작품의 소장자가 자기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해 찍는 도장을 장서인(藏書印)이라고 한다. 화가의 그림이나 서예가의 글씨에 자기 작품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찍는 낙관(落款)과는 형태는 같으나 쓰이는 목적이 다르므로 구별 되어졌다. 추사 세한도에도 소장자가 계속 바뀌며 많은 장서인이 찍혀져 있다. 장서인은 때로는 자기 과시나 교훈적인 목적으로 찍기도 하고 다른 장서와 구분하거나 소장을 기념하기 위해 찍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며 이러한 인장(印章)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도장보다는 사인으로 간편하게 약속 맺는 시절을 맞이했다. 성인이 되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선물 주었던 옥돌 도장과 상아 도장의 기억은 내 또래의 어른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평생을 소유할 수 있는 보물 같은 물건이 하나씩 잊혀가고 있다. 지금은 서예를 하는 특정인들만이 낙관 도장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이름과 호가 새겨진 도장을 갖게 되었다. 전각(篆刻) 영역에서 예술이 되어 작품과 함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술 도장을 서예를 하는 특정인만의 소유물이 아닌 대중이 다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도장으로 쓰임을 옮겨가면 어떠할까! 기계로 새기던 각자(刻者)는 전각예술가로 바뀌고, 그러므로 형태와 쓰임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서숙(書塾)의 시대를 벗어나 강연으로 서예를 가르치면서, 서예 강연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전각서예가의 도장을 한점씩 갖게 해 주고 싶었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자신이 애장하는 장서인 한 점씩 가지고 있어도 참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기계로 새겨진 도장이 아니라 전각예술가가 직접 새긴 작품 한점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가까운 지인들에게 도장을 하나씩 새겨 주었다. 처음에는 인감도장으로 쓰시라던 게 어느 날부터 내 입에서는 장서인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그때부터 책과 장서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내게 습관처럼 계속되고 있는 행동이 있다. 귀히 여기는 책에는 내 장서인을 찍는다. 인주를 묻혀 제법 재미있게나, 세련되거나, 졸박(拙朴)하게 새겨진 장서인으로 찍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새 책을 사면 어김없이 나의 도장을 찾는다. 그러면서 이런 호사를 나만이 누리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버렸다. “전 국민의 장서인 소장” 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다짐하듯 얘기를 했다.

    장난처럼 하던 말이 이젠 내 안으로부터 실행할 기회가 2023년도에 가능하게 되었다. 서예가의 생각, 예술에 대한 고민과 희열을 에세이로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서예가의 책이 전국 서점에 진열되고 더불어 책이 있는 곳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서예가의 책과 함께 장서인 한점씩을 새겨 주는 일을 기획하게 되었다. 북 토크와 작가와의 만남 현장에서 그들을 위한 도장을 새긴다. ‘전국민의 장서인화’를 서예가의 책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사람들의 두 번째, 세 번째 책에 그들이 소장하는 장서인을 책과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책과 장서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어울림인가! SNS와 유튜브로 인해 점점 책을 가까이하기 쉽지 않다. 동네 책방으로 가는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 옛것은 점점 사라져가고 지키려는 사람의 투쟁은 눈물겹다. 세상이 빨리 변해 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서예가로 인해 속도를 조금 늦추길 바란다. 그 속도전에 장서인이 책을 만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전 국민에게 내걸었다. “당신의 책에 1센티만큼의 공간을 비워놓고 장서인을 기다리는 기쁨은 아주 매력 있는 일이잖아요.”

    윤영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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