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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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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민생 외면한 ‘난방비 폭탄’- 양영석(지방자치부장)

  • 기사입력 : 2023-02-06 19: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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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친척 어르신에게서 평소에 3만원 정도 나오던 가스요금이 1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하소연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 분은 난방을 그리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터무니없이 많이 나왔다며 나라에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난방비를 지원한다고 하니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이 어르신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기초연금과 멀리 있는 자식들이 송금해 주는 용돈이 수입의 전부다. 그 돈으로 아파트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고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빠듯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가스요금이 3배 넘게 나왔으니 얼마 안 되는 생활비마저 줄여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시베리아 한파가 엄습한 올겨울에 보일러를 켜지 않고 냉수로 머리 감고 샤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스요금이 몇만원 더 나온 것 갖고 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취약계층에겐 큰 부담이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가구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이 어르신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서민 대부분이 연초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많이 부과된 가스요금 고지서를 보고 한숨을 쉬고 있다.

    정부가 가스요금을 올린 것은 이해가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비용이 급증해 9조원까지 불어난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영업손실)을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다.

    하지만 해외 가스 도입가격이 올랐으니 그 인상분만큼 국내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경제논리로 지난해 38.5%나 급격하게 올려야 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가스요금, 전기료 등 공공요금은 서민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상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한 설명·홍보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파급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인상폭, 인상시기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번 가스요금 인상은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평소보다 가스요금이 2~4배 많이 부과되면서 ‘난방비 폭탄’이라는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자 허둥지둥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대책을 내놓은 모양새를 보면 그러하다.

    정부 관계자도 가스요금이 이렇게 많이 부과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공공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수반한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심리가 위축돼 경기침체가 오고 국가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가스요금에 이어 전기료, 교통비, 상·하수도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됐거나 예고돼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공공요금을 올리면 물가는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식음료품 등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고, 식당과 목욕탕 등 서비스업종도 요금을 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난방비 폭탄은 민생에 대한 몰이해와 배려 부족, 즉흥적이고 근시안적 정책 결정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荷政猛於虎)’고 한다. 민생 정책 결정 시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말이다.

    양영석(지방자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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