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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배한봉(시인)

  • 기사입력 : 2023-03-01 19: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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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 고향은 어떤 의미를 지닌 장소일까? 개인의 행복이나 자아실현을 우선하는 이 시대에 두레 정신 같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곳이 될 수 있을까?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아이들 취업이나 혼사부터 노후 문제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한 친구가 부모님이 생전에 사시던 고향 빈집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가끔 들러 텃밭이나 일구며 쉼터로 삼으라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농공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고향이 낯설더라고 푸념하는 것이었다.

    고향이란 조화와 상생에 대한 인식의 공간이자 관계의 공간이라 여기던 나에게 고향이 낯설더라는 친구의 말은 꽤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정지용 시인은 어릴 적 고향의 느낌을 상실한 비애감을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노래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고향은 점점 흐릿하게 지워져 가고 있는 풍경화 같은 것인 듯하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폐수종으로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외쳤던 그가 공포에 떨면서 생을 마감한 이유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대 호사가들의 분석이다.

    현대인은 안식처로서의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존재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고향은 우리 영혼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들판에 흐르던 개울도 없어지고 공장이 들어섰지만 마을 성황목이나 추수를 마친 뒤 신명 지피던 풍물놀이는 우리 마음속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들 살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이런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향이다. 못 먹고 못 살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상처 난 마음, 지친 몸을 쉬게 해주던 부모님 품 같은 정신적 유토피아로서의 고향을 마음에 간직하자는 것이다.

    봄이 시작됐다. 잃어버린 고향을 회복하자. 그리고 고향 정신을 회복하자. 마음속에 고향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삶의 꽃샘바람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배한봉(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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