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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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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주의 반차 내고 떠나는 트립 인경남] (4) 문득 떠나온 통영 학림도

島를 아십니까 감동은 밀물처럼 밀려오고 근심은 썰물처럼 쓸려가는…

  • 기사입력 : 2024-05-02 21: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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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통영의 작은 섬
    선착장 옆에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조형물
    바다 앞 해안공원 ‘앙증맞은 청색열차’ 눈길

    해송숲공원·바지락체험장 가는 길 꽃들이 인사
    바다생태체험장 전망대서 본 기암절벽에 감탄
    파랗게 펼쳐진 바다 풍경과 섬의 매력에도 풍덩


    불과 한두 주일 만에 앞산이 갈색에서 연초록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제법 초록이 짙어간다. 할 일은 많은데 몸은 들썩이고 마음은 이미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있다. 며칠 전 책에서 봤던 섬 그림자는 눈앞에서 빨리 오라 손짓하고 두 손은 하던 일을 마치라고 닦달한다. 잠시 갈등하는데 폴 발레리가 내 귓등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걸!” 손 털고 일어섰다, 그래 가자, 봄 해무가 아른거리는 섬으로! 통영 학림도에 좌표 찍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아항으로 내달린다. 마치지 못한 일들은 돌아올 때까지 싹 잊자.

    학림도 바다생태체험장이 바다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학림도 바다생태체험장이 바다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학림도= 섬의 지형이 새가 날고 있는 모습에서 지역민들은 ‘새섬’이라 했고, 새 조(鳥), 섬 도(島)의 ‘조도’라고도 했다. 그리고 소나무가 무성하고 학이 많아 1900년부터 학림도라 불리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0.72㎡의 면적에 해안선 길이가 7.7㎞에 이른다. 최고점 106m 구릉으로 기복이 심하며 농경지가 일부 조성되어 있다. 2024년 2월 22일 기준 53가구의 주민 96명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가두리양식이 활발하다.



    ◇달아항에서 배를 타면 10분

    연일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쳤지만, 뿌연 미세먼지로 산은 잿빛이고 하늘은 구름이 엷게 덮고 있다. 오전 10시 40분 달아항에 도착. 매표소 앞 유료주차장엔 평일임에도 빈 곳이 몇 안 된다. 매표소에서 승선표에 기재 사항 작성 후 신분증을 제시하고 승선권을 끊었다. 왕복 8000원.

    달아항은 코끼리의 어금니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코끼리 어금니를 실제로 본 적 없지만 이름이 귀에 쏙 박힌다. 달아항엔 인근 5도(학림도·송도·저도·연대도·만지도)를 경유하는 두 배편이 있다. 평일엔 ‘섬나이들호’가 정기적으로 5회 운항하고, 섬나이들호 운항 시간 사이 ‘진영호’가 수시 운항하고 있으며 주말엔 2배로 증설 운항한다. 이들 선박은 33t으로 승객 40명이 승선할 수 있는 규모다.

    섬나들이호엔 이미 사람들이 승선하고 있다. 관광객보단 지역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른 아침 병원에 갔다 온다는 사람들, 생필품을 산 사람들이 억센 사투리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시니어 몇 분은 2층 여객실을 향해 계단을 엉금엉금 오른다. 좁은 공간에 놓인 의자 몇 개는 이미 만석이다. 11시 10분. 출항 시간이다. 선장과 기관장이 허겁지겁 뛰어와 조타실과 기관실로 가고 갑판장은 육지와 연결된 밧줄을 푼다. 나그네는 1층 선상 난간에 몸을 기댔다. 낯선 사람 몇은 일행끼리 날씨와 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생필품 박스들이 갑판 양쪽에 가득하다.

    출항을 알리는 고동 소리는 기대치를 밑돈다. 부웅! 하는 낭만적 웅장함이 아니라 삐이익! 하는 한없이 가벼운 음향이다. 여행 기분이 살짝 다운되었으나 자신을 위로했다. ‘이건 대형 크루즈가 아니라 섬마을 배야. 라이브로 섬사람들 생활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배는 금방 항구를 벗어났다. 파랗게 펼쳐진 바다 풍경이 눈과 폐를 씻어준다. 섬 사이를 빠르게 달리는 작은 어선 하나가 사진처럼 시야에 찍히며 고정된다.

    선장 인사말처럼 날씨는 맑으나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려 아쉽다. 사진이 걱정된다. 봄엔 멀쩡한 날이 몇 안 된다. 저만치 작은 섬들이 녹색이 아닌 흑백의 네거티브 사진처럼 다가온다. 통통통…, 엔진소리와 함께 푸른 수면을 밀쳐내며 뿜어 나온 포말이 멀어진다. 포말과 함께 조금 전까지 내 영혼을 갉아먹던 현실의 갈등과 애증도 아득히 멀어지고 있다. 비로소 느낌표가 뜬다. 자유다!

    학림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둘 학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괭이갈매기도 창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관이다. 달아항에서 학림도까지 10분. 아주 찰나의 시간에 내가 밟고 있던 세계에서 튕겨 나와 작은 섬에 뚝 떨어졌다. 그래서 섬은 매력적이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사는 세상과 풍경도 사람도 냄새도 아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이 된다는 것.

    학림마을 풍경.
    학림마을 풍경.
    마을 정보센터 앞에 있는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조형물.
    마을 정보센터 앞에 있는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조형물.

    ◇학림도의 풍경 앨범

    학림도 학림마을에 첫발을 딛는다. 역대 대통령 네 분이 다녀가셨다는 학림도. 배에서 내리니 한 마리 학이 비상하는 이미지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야트막한 언덕에 마을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도로변에는 ‘학림보건진료소’와 ‘학림휴양관’ 그리고 ‘마을정보센터’가 모여 있다. 도로 중앙쯤 후박나무 한 그루를 영산홍이 둘러싸고 있고, ‘학림휴양관’ 앞엔 목재로 디자인한 ‘학림섬 정보화마을 관광 안내도’가 반긴다.

    선착장이자 해안공원인 학림마을 입구. 관광객을 언제든 맞이할 수 있다는 듯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바다 앞 해안공원엔 앙증맞은 다섯 량의 청색 열차가 전시품처럼 놓여 있다. 주말 어린이 관광객들을 위해 기획 제작한 듯하다. 어린이용이지만 당장 나그네도 타 보고 싶은데 차마 요청은 못 했다.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봄을 맞은 바다에서는 양식장 정비작업에 한창이다. 육지라면 농사가 시작된 셈이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바다의 진정한 힘찬 고동이 느껴진다.

    선착장 옆 포토존. ‘학림도로 힐링하러 오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선착장 옆 포토존. ‘학림도로 힐링하러 오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해안공원에 다섯 량의 청색열차가 서 있다.
    해안공원에 다섯 량의 청색열차가 서 있다.

    해안공원에서 이정표 따라 왼쪽 ‘해송숲공원’과 ‘바지락체험장’ 쪽으로 걷는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꽃밭이다. 팬지를 비롯한 원색의 예쁜 꽃들이 줄지어 봄노래를 부르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한눈에 오롯이 들어오는 마을이다. 저만치 등대도 마을의 식구가 되어 바다를 지키고 있다.

    바로 옆에 ‘해송숲공원’으로 오르는 데크 계단이 있다. 가파르지만 가뿐하게 올랐다. 첫눈에 드는 것이 팔각정. 나그네가 사는 도시의 공원 선입견이었을까. 너무 아담한 규모에 놀랐다. 그러나 공원을 둘러싼 해송들은 한눈에도 우람한 노거수다. 공원 규모가 작다고 깔볼 게 아니었다. 이런 노거수는 육지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지락체험장 가는 길.
    바지락체험장 가는 길.
    해송숲공원.
    해송숲공원.
    학림도 이바구길에 드러누워 있는 노거수.
    학림도 이바구길에 드러누워 있는 노거수.

    계단을 내려와 해안공원과 경계를 달리하는 학림길을 걷는다. 학림도는 지형이 양식장에 아주 적합하다. 수면에 드러난 양식장의 파노라마를 보며 5분이나 걸었을까? ‘바지락체험장’이다. 바지락체험장은 주말에 유료로 개장한다. 대개 다섯 물과 아홉 물이 되면 1인당 1만5000원의 입장료에 호미와 장화를 제공한다. 주말이면 바지락체험장이 반질반질하지 않을까. 썰물로 드러난 바지락체험장은 파래류로 덮여 있다. 괭이갈매기들이 일상처럼 바지락체험장을 점령하고 있다. 육질 좋은 바지락 맛을 이미 아나 보다.

    바지락체험장이 끝나는 데서 ‘바다생태체험장’ 전망대 방향으로 걷는다.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기암절벽이 경이로울 뿐 아니라 지면엔 이란성 쌍둥이 같은 연못이 있다. 자연과 사람이 합작해서 만든 것으로 썰물과 밀물을 이용한 ‘바다생태체험장’이다. 이장님 얘기에 따르면, 여름철(6~9월) 물때에 따라 문어 성게 고둥 해삼 노래미 볼락 등을 잡을 수 있단다. 입장료는 무료. 여름엔 아이들과 오면 정말 좋아할 것 같다. 전망대 데크 계단 위에서 체험장을 보며 앵글을 조절한다.

    물이 빠져나간 작은 바위엔 조개와 보말고둥들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고 바지선엔 작업 끝난 흔적이 역력하다. 바람이 없는데도 물결이 일렁이며 물 주름을 만들고 있다. 먼 데서 배가 지나가고 있나 보다. 송전탑이 바로 눈앞에 있다. ‘바다생태체험장’ 전망대에서 저 멀리 보였던 송전탑을 가까이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 학림도의 지형이 주는 선물이다. 송전탑이 기하학적이다. 도심지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높이며 독특한 디자인이다. 나중에 ‘한려제일탑’임을 알게 됐다.

    태고의 세월이 층층이 쌓여 있는 상사바위.
    태고의 세월이 층층이 쌓여 있는 상사바위.
    상사바위에서 본 주상절리.
    상사바위에서 본 주상절리.

    송전탑을 제대로 보고 굽은 길을 지났을 때 눈앞의 광경 인식에 수 초가 걸렸다. 봉우리만 보면 딱 세 개의 섬이다. 그러나 암반으로 연결되었으니 섬은 아니다. 가운데 봉우리는 외딴섬 같다. 어쩌자고 섬에 모여서 서로가 외딴섬이 됐을까. 학림도엔 도깨비가 많았다는 전설로 미루어 도깨비의 장난일까? 상사바위 가까이 다가간다. 태고의 세월이 층층이 쌓였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암석들과 바위 틈새에 뻗어 나온 초록 넝쿨 식물들. 그리고 바위 정상에서 용케 뿌리를 내린 소나무 몇 그루. 한 줌도 안 되는 틈바구니 흙에서 피워 올린 초록의 풀잎 한 포기. 무심코 뽑다가 놀라서 다시 심었다. 향기 물씬 나는 달래였다. 바닷물이 넘나드는 암반 틈바구니에서 달래가 피다니. 가슴이 짜르르하게 아려온다. 나는 세상의 어느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걸까. 다리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연약해 보이는 풀잎 하나도 이 척박한 곳에서 그들만의 생존법으로 자연에 의연히 맞서고 있지 않은가.

    ◇머리를 조심하세요!

    근처 학림도 비경 중 하나인 주상절리는 울울창창한 소나무들과 손짓을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 코로 바다의 냄새를 느꼈는데 이제는 입과 폐에서 짭조름한 냄새가 올라온다. 모르는 사이 바닷물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밀려든 것 같다.

    해양공원 입구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갈래가 다른 이바구길로 접어든다. 약간 오르막길이다. 노거수들의 수령이 엇비슷할 듯하다. 몇 그루는 숲 쪽으로 드러누웠다. 아마도 오래전 태풍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스듬히 누운 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듯하다. 안내판은 없지만 주 가지를 철제빔 몇 개가 받치고 있다. 그리고 길을 가로막고 누워 세월을 읽고 있는 나무에 팻말이 걸려 있다. ‘머리를 조심하세요!’ 머리를 숙여 몸을 낮추어야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다. 봉이 김선달이 봤더라면 이 노거수를 지날 때마다 통행료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부디 누워서라도 천수를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항상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머리 하기 따라서 몸이 덜 고생할 테니까. 학림이바구길에서 학림이바구를 다 듣지 못해 아쉽다.

    딱 1시간. 학림도를 걷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리고 오후 2시 45분. 학림도에서 달아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어김없이 포말이 넘실대고 파도가 너울진다. 테트라포드의 물 자국이 위와 아래 농도가 다르다. 아직 썰물의 시간인가 보다. 먼 데 섬들은 여전히 무채색이다. 청정한 날 학림도는 더 반겨주겠지.

    도희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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