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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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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책] 인격예술

“글씨는 곧 그 사람” 붓으로 쓰는 인격
사천서 한글 서예가로 활동하는 윤영미 서예가
예술인 삶·가치관·인생철학 담은 에세이 펴내

  • 기사입력 : 2023-06-23 0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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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기술이나 기교의 행위가 아닌 인격을 담는 예술이다. 머리, 가슴, 손끝으로 내려오는 집중력으로 점을 내리찍고 획을 긋고 써 내려가는 글자에는 오롯이 나의 생각과 의식이 그대로 담긴다.”

    사천에서 한글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순원(筍園) 윤영미 서예가가 예술인으로서의 삶과 가치관, 인생철학을 담은 에세이 ‘인격예술’을 펴냈다.

    순원 윤영미 서예가 에세이 ‘인격예술’.
    순원 윤영미 서예가 에세이 ‘인격예술’.

    그는 처음부터 한글 서예를 한 것은 아니다. 첫 공모전 수상도, 첫 개인전도 한자 서예였다. 상형에 가까운 형태부터 흘림의 형태까지 수십 년을 한자로 붓을 잡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술이랍시고 완전히 체화되지 않은 언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자신이 이해되질 않았다. 대신 공기처럼 호흡하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을 만들길 꿈꿨다.

    그만의 독창적인 서체인 ‘순원체’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삐뚤빼뚤하지만 아름답고, 자유롭지만 묘한 질서가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씨란 평가를 받는다. 순원은 순원체를 오감으로 써내려간 글씨라고 말한다. 글씨를 써 내려가며 느꼈던 감정들이 작품에 모두 담겨 있다는 의미다.

    책에는 순원체로 쓴 작품 47점이 수록돼 있다. 작품 중에 시선이 가는 글씨는 단연 ‘ㅆ’으로 시작되는 두글짜 욕설이다. 작업실을 방문한 젊은 학자가 부탁해 쓰인 작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순원은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표출한 글씨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화된다”고 말하며 언젠가 꼭 욕으로 된 전시를 펼치겠다고 다짐한다.

    순원 윤영미 作 ‘아무 일 없이 산다’./순원/
    순원 윤영미 作 ‘아무 일 없이 산다’./순원/

    순원의 예술에서 파생된 인생철학은 한글만큼 명료하다. “예술보다 인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소개한다. 세한도는 1844년 추사의 제자인 이상적이 귀한 책을 보내준 것에 대한 답례로 쓴 작품인데, 순원은 작품에 양각으로 새겨진 ‘장무상망’을 주목한다. 장무상망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이란 뜻이다. 시대를 뛰어넘어도 글로써 전달되는 고결한 의미야 말로 순원이 말한 글씨의 힘이다.

    순원은 48살 나이에 20여 년간 운영하던 서예원을 닫고 세상에 나왔다. 그의 서예는 시각에 머무는 전시가 아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공연이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 좌석을 매진시켰다. ‘인격예술’ 출간을 기념해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사천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인격예술: 붓을 들고 금기를 깨는 한글서예가가 전하는 삶의 카타르시스’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북토크를 열고 글씨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순원의 좌우명은 ‘서여기인(書如其人)’으로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이다. 그의 글씨처럼 그는 어떤 금기도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자 한다. 그 끝엔 긍정이 있다. 서예가가 써 내려가는 글씨는 염원이자 희망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시를 쓰기도 하고 선인의 명구를 쓰고 벽에 걸어 놓고 늘 바라볼 글을 쓴다. 붓끝에 기운을 넣고 끝없는 축복을 글씨로 써 내려간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산다(115p)’는 건 특별한 일이 될 것이고, ‘심장 뛰는 기쁨(129p)’을 삶 속에서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 윤영미, 출판 나비클럽, 280쪽, 가격 1만8000원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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