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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어떤 인문학- 유승영(시인)

  • 기사입력 : 2023-08-17 19: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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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타자와의 공감이 중요하다.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강의가 개인과 단체에 중요한 강좌로 자리를 잡았고 시원하고 쾌적한 장소에서 또는 유튜브의 괜찮은 채널들을 만나기도 한다. 인문학은 내 방식의 삶에서 한 단계 도약해 보는 철학이자 문학이기도 하여, 요즘 같은 지식의 방대함에서 나에게 딱 맞는 삶으로의 전환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삶의 방향을 하나로 압축해 주거나 요약해 주는 것으로 하루의 루틴을 만들어 시행착오와 시간 낭비를 줄여가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루틴이 각 개인의 취향과 경험과 지식으로 다시 걸러지고 수많은 언어의 공간 속으로 흩어지고 흩어진다.

    중년 이후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단절이라고 한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하고 있을 때 ‘고독’이라는 단절이 적용될 수 있겠다. 가족과 있을 때 가장 고독하다는 말은 마음을 맞추는 게 아니고 돈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했을 때 씁쓸하고도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 같기도 하지만 가족과 고독은 차원 높은 단절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에 공감을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인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의 간극은 얼마쯤일까. 그녀는 끊임없이 말했다. 지구를 지키는 일을 이야기하고 지구를 지키는 일은 내 몸을 돌보는 일이라고도 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라고도 한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하늘이라는 우주적인 언어와 우편이라는 사회적 언어를 말했다. 시의 사회성은 언어의 사회성에서 이끌어진 것이 아니라 시인이라고 하는 인간과 관계된 것이라고 한다. 시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우주적인 것에서 사회성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시를 쓰고 시를 읽는 것은 코스모스와 엮이고 인간과 엮였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시인은 시를 지을 의무가 있듯이 조금 서툴더라도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시는 반드시 사회적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멋대로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자신에게 성실하듯이 사회를 위해 성실한 것 사이에서 시를 쓰면 되겠디. 시대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며 삶의 다양한 새로움, 그것이 우리의 자신을 말하든 일반적인 시인을 말하든 이념적이고도 근본적인 사회주의거나 신비주의거나 공통점을 가지고 시를 쓰고 사람을 만나고 관계에 성공해야 한다.

    시인은 아웃사이더이다. 형식적으로는 인사이더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느끼는 전반적인 소외감과 단절은 삶 속에서는 살아있음이다. 자기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하려 애쓰는 삶이야말로 단절과 소외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서는 단절과 고독과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에게 집중하여 나를 위해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의 간극을 채워가는 것이 내가 완성해 가는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시를 쓰나요. 언제부터 시를 썼나요.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 행의 시구가 떠오를 때까지, 불안이 목까지 차오를 때까지 소통하며 공감하는 더욱더 구체적으로 삶에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멀리서 초록 움이 튼다.

    유승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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