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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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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세대(世代)의 유효기간-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23-08-23 19: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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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92학번이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고, 그 사이에 ‘아크로폴리스’라는 넓은 광장이 있다.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 사이 학생회관이 직각으로 있어 오목한 그 사이 광장에서 학생들이 자주 집회를 했다.

    대학본부를 등지고 가설 자재를 세워 연단을 만들면 집회는 도서관을 바라보고 열리게 된다. 쾅쾅 울리는 앰프를 틀고 민중가요와 연설이 이어졌고, 집회가 절정에 이를 무렵 경찰에 수배 중이던 총학생회장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연출된 장면이었겠으나, 학생들은 건재한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감동했다. 그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YS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1년 등장해 1992년까지 정권을 잡은 군부정치가 막을 내린 것이다.

    집회에서 들리는 큰 소리는 정확히 도서관을 조준한다. 집회가 예정된 날 공부가 바쁜 학생들은 특별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반대편 열람실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같으면 도서관을 향해 엄청난 소음을 발산하는 집회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1980년의 학살자들도,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권부(權府)의 그 누구도 전혀 죗값을 받지 않았다. 학생들은 서로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했다.

    청춘 시절 각인된 감성과 세계관은 사람의 평생을 지배한다. 소식이 끊겼던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면, ‘이 사람은 이래서 좋았고, 이래서 불편했었지.’ 하는 과거의 기억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듯이,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잘 안 변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격변한다. 인터넷, 휴대전화도 없었던 그 시절은 그리움의 대상일 수는 있으되, 이제 그때의 감성과 세계관은 구식이 되었다.

    세상은 옛날처럼 선명하게 대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상대가 악한(惡漢)이므로 나는 선(善)한 사람이다. 내게 잘못이 있더라도 상대보다는 적어도 낫지 않느냐?’는 선동은 퇴행적이 되었다. 상대를 악마화하여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방식은 ‘내가 계속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탐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동안 세운 공에 큰 박수를 받으며 역사 속으로 퇴장할 때가 되었다.

    김상군(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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