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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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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야생차- 조향옥

  • 기사입력 : 2023-09-14 08: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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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있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래를 보는 강가에서

    별이 떨어져 모래알이 되었다고 믿는 강가에서

    그냥 있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찻잔 속에 빠진 찻잎을 입술로 밀어내면

    늘 흐느끼는 무엇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강가에서

    달빛 마시고

    모래가 그려 놓은 물결을 보며


    그냥

    나는 있었습니다


    ☞야생차 시배지로 널리 알려진 하동은 섬진강과 지리산이 아무런 경계 없이 사계를 감싸 돌며 1200년 천혜의 지리적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 야생에서는 중심도 주변도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 걸지 않은 곳이며 오직 ‘지금’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이 주목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은 곳. 야성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겸허를 배우고 또한 공생의 지혜를 깨우칠 따름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왜- 여기- 이곳에- 그냥- 있는 걸까! 그냥이란 말, 참 좋다. 의미 없는 듯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어조로 ‘그냥 불러봤어, 그냥 걸었어’ 등. 야생으로 빚은 찻잎이 찻잔 속에서 천천히 우려낸 빛깔처럼,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아련한 말이기도 하다. 하늘 우러러 비로소 가을의 문턱이다. 내면의 아우성에 귀 기울여 정작 내 안의 야성을 깨워야 할 시간이다. 한 편의 시가 오는 길목인지도 모른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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