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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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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트렌드] 2030 ‘생활기록부’ 조회 열풍

학창시절 나를 만나 생기를 찾다

  • 기사입력 : 2023-10-19 21: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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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사에 책임감이 강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꼼꼼함. 철저한 자기관리로 흐트러짐 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학업에 임하기에 앞으로 더 발전적인 모습이 기대됨.”(한유진 기자의 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중 일부)

    지난 주말, 기자가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장에서 동창들과 만나 나눈 이야깃거리의 핵심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생활기록부’ 였다.

    “너 생활기록부 조회해 봤어?”

    “아니, 넌?”

    “난 조회해봤지. 온라인에서 금방 뗄 수 있어.”

    “나도. 담임선생님이 잘 적어주셔서 조금 놀랐어. (캡처한 생활기록부를 보여주면서)이렇게 적혀 있었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칭찬받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더라. 직장생활하면서 칭찬받을 일이 잘 없잖아.”


    이날 본인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조회해봤다. 과연 어릴 적 내 모습은 어땠는지, 선생님들은 나를 어떤 학생으로 바라봤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들여다본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의 생활기록부 안에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담겨 있었다. 쭉 읽어가다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면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동력이 됐다.

    이처럼 최근 2030 사이에서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조회 열풍이 불고 있다. SNS상에서 이들은 생활기록부 일부를 캡처해 올리면서 자신의 학창시절 모습을 다수에게 인증하기도 한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성격유형검사(MBTI)를 넘어 생활기록부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수단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다. 한편에서는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평가에 생활기록부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등 힐링된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최근 청년층 생활기록부 조회 대세
    2003년 이후 초·중·고 졸업생이라면
    ‘정부24’ 홈페이지 통해 발급 가능

    SNS에 생기부 사진 공유하며 ‘힐링’
    ‘행동특성·종합의견’ 항목 제일 주목
    배우자 조건 ‘생기부 열람’ 내걸기도


    ◇생활기록부 조회, 그게 뭐야?

    생활기록부에는 초·중·고등학교 당시 성적을 비롯해 수상 내역, 생활 태도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2003년 이후 초·중·고등학교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정부24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볼 수 있다.

    정부24 홈페이지에 접속해 ‘생활기록부 발급’을 검색한 뒤 민원 신청을 하고, 공인인증 절차만 거치면 바로 온라인에서 조회와 출력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학교 행정실을 방문해야만 조회할 수 있었지만 이제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발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생활기록부의 여러 항목 중에서도 2030세대가 주목하는 대목은 바로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다. 학생의 성격 특징이나 행동 특성에 대한 의견을 담임선생님이 적어 놓은 부분으로, 한두 문장으로 정리돼 있는 해당 부분을 읽으면 어릴 적 자신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급우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로 학급의 협동을 유도함’ 등 담임 선생님의 눈에 비친 학생의 학창시절 모습이 기재돼 있다. 이를 통해 어릴 적 자신 혹은 타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결혼할 상대를 찾아주는 한 TV 연예 프로그램에서는 중매 의뢰인이 배우자의 조건으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열람을 내걸기도 했다.



    “희망적·긍정적 메시지 가득해 큰 힘”
    “나도 몰랐던 나의 장점·특기 알게 돼”
    “잘 살아갈 동력 얻어” 등 긍정 반응


    ◇생기부 열풍, 반응은?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9월19일까지 정부24와 무인 민원창구 등을 통해 발급된 생활기록부는 총148만387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6만6182건) 대비 3.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생활기록부 발급이 큰 인기를 끌면서 지난달 초에는 정부24의 생활기록부 조회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되는 일도 발생했다.

    생활기록부 열풍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생활기록부’와 ‘생기부’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각각 1만1000여개, 1만6000여개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는 생활기록부 잘 쓰는 법 등 입시 관련 정보가 주로 게시됐다면, 최근에는 2030세대가 자신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인증하는 내용이 인기게시물로 자리잡고 있다.

    생활기록부를 SNS상에 게시한 누리꾼들은 ‘나는 태어날 때부터 활발한 E성향이었다’, ‘MBTI보다 정확하다’, ‘담임선생님께 감동받았다’는 등의 후기를 공유했다.

    김민정(30)씨는 “당시 무뚝뚝했던 담임선생님이 가장 세세하고 길게 좋은 내용을 많이 담아주셔서 감동을 받았다”며 “생활기록부 안에는 대체적으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가득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정현석(29)씨는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의 특기와 장점들을 생활기록부를 통해 알게 됐다”며 “읽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오르는 것 같고, 힐링이 됐다. 학창시절 이따금씩 말썽도 피웠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도 좋은 모습을 봐주셔서 감사하다’ 생각하면서 보다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전했다.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통해서 생활기록부를 떼 볼 수 있는 환경적 변화와 함께 현재 미디어 상에서는 바디프로필이나 프로필 사진 촬영 등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립해 나가는 현상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며 “생활기록부를 조회하고 온라인에 게시하는 현상 역시 ‘어떤 10대를 보냈는가’를 통해서 지금 현재의 나를 설명하고자 하는 미디어적 욕구가 강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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