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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김해 도자의 중심 상동 분청사기가마터- 김재홍(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 기사입력 : 2023-11-02 19: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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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지역에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기가마터가 있으며 현재까지도 각 지역에는 그 명맥을 잇는 도예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해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삼한시대 ‘구야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하고 ‘가락국’으로 발전하였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 김해부, 조선시대는 김해도호부로 오늘날 부산시의 녹산면·강서구·가락동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 김해의 권역이었다.

    오늘날 김해지역에는 청자가마터 1개소, 분청사기가마터 3개소, 백자가마터 10개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가마터는 김해지역의 북동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이 상동면으로 지금은 대동면으로 개편된 하동면(下東面)과 함께 김해도호부 동부지역이었으나 김해도호부의 동편 위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어 상동면(上東面)이라는 한자명으로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는 지역이다.

    상동면과 관련된 기록은 조선 초기 문헌에서도 확인되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 ‘사철(沙鐵)이 부의 동쪽에 있는 감물야촌(甘勿也村)에서 난다’는 기록과 ‘부의 동쪽 감물야촌에 하품 자기소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경상도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에서도 김해도호부의 동쪽 감물야촌에 하품 자기소 1개소가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김해도호부의 치소가 위치하던 곳이 현재의 동상동으로 그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대감물야리’라는 지명이 축약된 상동면 대감리 지역이 자기소가 있었던 감물야촌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2016년 발굴조사된 가마터가 상동 분청사기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사선서’, ‘장흥고’ 및 김해도호부의 관청에 공납하기 위해 ‘김해’가 시문된 공납용 분청사기를 제작하다가 1469년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된 이후 공납용 자기의 생산을 중단하고 민수용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제작하였다는 점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김해 상동 분청사기가마터는 가마터의 일부만 발굴조사되었으나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2017년 7월 도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김재홍(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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