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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김해 도자의 중심 상동 백자가마터- 김재홍(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 기사입력 : 2023-11-09 19: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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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의 발굴이 끝나고 상동면 일대에 분포하는 가마터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는 중 2018년 상동 백자가마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어 2019년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가마터는 사기점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기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는 의미의 지명을 통해서도 가마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울창한 숲 가운데 계곡이 인접하여 땔감으로 쓸 나무와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갖춘 곳이다.

    상동 백자 가마터에서 조사된 자기가마는 3기로 가마의 형태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마 주위에는 제작에 실패한 백자를 버린 폐기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폐기장에서 대략 4만6000여 점의 백자와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대부분의 백자는 일상생활에서 주로 사용되는 식생활 용기로 밥그릇에 해당하는 ‘발’과 국그릇에 해당하는 ‘대접’, 접시, 종지, 잔 등이었다. 그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발’과 접시이고 국그릇에 해당하는 ‘대접’의 수량은 적어서 당시 식습관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특히 상동 백자 가마터에서는 철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한 철화백자가 확인된다. 붓으로 풀, 꽃, 선을 그려 넣었는데, 간략하고 소박한 멋이 있다. 그리고 한글로 ‘가갸, 자쟈’를 적은 잔 2점과 ‘샹동쥰발’이 새겨진 종지 1점이 출토되었다. 백자에서 한글은 종종 확인되는데, 당시 백자를 만들었던 사기장 사이에 한글이 널리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민간에까지 한글이 넓게 보급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샹동쥰발’이라는 한글을 통해 가마가 위치한 곳의 지명이 조선시대에도 ‘상동’이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어 지명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상동 백자 가마터는 출토된 유물과 가마의 구조를 통해 1650년 이후 운영되었으며 민수용의 백자를 대량 생산한 가마터임이 밝혀졌다. 이 가마를 통해 조선 전기 문헌기록에 남아 있던 ‘감물야촌’의 도자마을이 양란 이후에도 분청사기를 제작하던 전통을 계승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재홍(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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