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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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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황미영(거제교육지원청 중등장학사)

  • 기사입력 : 2023-11-12 19: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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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인타임’은 세상의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된다. 물건을 구매하고 시간을 지불하고 노동의 대가로 또 시간을 부여받는다.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이며 오로지 시간이 세상을 통제한다. 10여 년 전 봤던 이 영화가 생각난 이유는 ‘2024 트렌드코리아’에서 2024년 트렌드를 ‘분초사회’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분초사회’란 모두가 시간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분초를 다투는 시간지상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다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요즘 바쁘시죠?’,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인사말 뒤에는 상대방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한 마음이 담겨있다. 주변을 봐도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나 유튜브 콘텐츠를 1.5배속으로 재생하며 시간을 절약한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으면 요약본을 보거나 결말을 알려주는 영상만 골라 보는 모습도 흔하며 가성비가 아닌 시성비를 높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도 늘어났다. 요즘의 트렌드에 맞게 식당이나 병원에서는 원격 줄서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 택시를 이용해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소요 시간을 정확히 알려줌으로써 고객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들여 돈을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된 것 같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많은 것을 경험하려 하고 남들보다 더 멀리, 빨리 가려고 하다 보니 ‘갓생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보면서 무엇을 놓치는지도 모른 채 혹시 놓치는 것이 있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야말로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사람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명명했다. 앞만 보며 끊임없이 달려갈 때보다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더 정확한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혹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불안해하는 우리의 뇌를 초기 설정하듯 전원을 좀 꺼두고 우리의 뇌에 생각이 배회할 공간을 만들어 주자.

    황미영(거제교육지원청 중등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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