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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셀프계산대- 강희정(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23-11-20 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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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지어 선 유인계산대를 피해 셀프계산대 앞에 섰다. 요즘 흔해진 셀프계산이라 무심히 바코드를 찍고 결제카드를 대는 순간 강렬한 경고음이 난다. 카드를 다시 한 번 대보지만 경고음과 함께 직원 도움을 받으라는 기계음까지 들린다. 가까이 있던 직원이 달려와 똑같은 절차를 옆 셀프계산대에서 다시 하란다. 빨리 끝내려고 한 셀프계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당황함까지 더해 기분이 개운치 않다.

    ▼계산대 앞 풍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바코드를 찍지 않고 담기만 해도 자동계산이 되기도 한다. 최소한 기술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빠른 계산의 시대가 왔다. 하지만 최근 셀프계산대를 선도적으로 도입했던 미국과 영국 대형마트들은 있던 것도 없애는 추세다. 잦은 결제 오류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져 대기가 길어지게 됐고, 불편 해소를 위한 인력이 더 필요했다. 게다가 셀프계산의 허점을 활용한 절도 사건까지 잦으면서 매출 손실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셀프서비스로 ‘그림자 노동’을 하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림자 노동’은 일을 했지만 보수가 없는 무급 활동으로,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동명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즉 무인화 시스템이 도입되며 주문 접수, 결제 등의 노동이 소비자의 몫이 됐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는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 “돈도 받지 않고 일해 주는 고객에게 일을 넘겨줌으로써 그 많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자본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셀프계산대뿐일까. 식당에서 터치 스크린으로 주문하고, 카페에서 마신 커피잔을 치우는 것 등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들이 자꾸 떠맡겨진다. 시대 흐름에 따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일손을 덜어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보상 없는 자발적 노동이 기업 이윤과 직결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강희정(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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