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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세월유수(歲月流水)-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3-12-06 19: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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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나이 들었다’는 현실을 전제한다. ‘늙었지만 그나마 봐 줄 만하다’는 속내의 완곡한 표현인지 모른다. 생로병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사람이 배 안에 있으면서 물결을 따라 흘러 떠내려가노라면 자기가 멀리 왔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오직 보이는 게 다르다는 것만 기억한다.’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거목 혜환 이용휴는 자신은 항상 그대로인 듯하지만, 세월은 물 흐르듯 지나간다(歲月流水)고 했다.

    ▼인간에게 시간은 물리적 개념을 넘어선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삶의 실존 범주로 확대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간성이란 있어 오면서(과거), 마주하면서(현재), 다가감(미래)이다”고 했다. 미래는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 가능성을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시간이라고 해석했다. 인간이 시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효용가치로서 시간은 질적 평가에 근거한다. 인생은 산술적 누적보다는 내적 충실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미다.

    ▼세월의 무게에 비례해 인간 척도로 요구받는 게 ‘나잇값’이다. 값은 사물에 매기는 가치평가다. 보편적일 때 그 값은 사회적으로 통용된다. 나잇값은 연륜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종의 도덕률 개념이다.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는 옛말은 이런 통념의 반영이다. 막돼먹은 이들이 나이만 앞세워 거들먹거리는 데 대한 냉소다.

    ▼12월은 지난 궤적을 돌아보는 즈음이다. 삶의 실존적 평가 시간이다. 흐르는 물처럼 쉼 없이 가는 시간 속에 나잇값은 제대로 했는지 되짚는다. 유한한 인생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白駒過隙) 찰나처럼 짧은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장자)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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