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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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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유세(遊說)의 시대-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석천학당 원장)

  • 기사입력 : 2024-01-04 18: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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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가 바뀌자마자 국회의원 예비 출마자들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달라는 문자와 전화가 빗발친다. 그러고 보니 올해 가장 큰 이슈는 3개월 남짓 남은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총선을 준비 중인 정당 대표들과 당직자들은 벌써 전국을 오가며 민심의 주도권을 잡으려 분주하고, 총선에 나갈 예비 후보들은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자기 이름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리려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4월 10일 이전까지는 온통 선거 이야기로 뒤덮일 기세다. 바야흐로 선거 정국이라는 큰 장이 대한민국에 서고 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유권자의 표다. 유권자를 설득하여 마음을 얻는 과정을 유세(遊說)라고 한다. 유(遊)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라는 뜻이고, 세(說)는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말하여 ‘설득한다’라는 뜻이다. 유세의 기원은 강태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폭군 주(紂)의 신하였던 강태공은 자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른 제후들에게 돌아다니며 자기의 정치적 이상을 유세하였다. 결국 문왕(文王)에게 유세하여 문왕의 신하가 되었고,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나라 건국의 주역이 되어 제(齊)나라 제후로 봉해졌다. 유세의 성공으로 부와 지위를 얻은 것이다. 최초의 유세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귀족이나 왕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지금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대상이다. 공자나 맹자를 비롯하여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은 모두 귀족을 상대로 한 유세객이었다. 그들은 귀족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유세하였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청사진을 제시하여야만 유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세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자는 유세 도중 봉변을 당해 제자들과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유세의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성공과 당선, 또는 실패와 낙선이라는 결과다. 성공과 당선은 높은 지위와 부를 보장해주고, 실패와 낙선은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필자의 지인 중에도 당선된 사람과 낙선한 사람으로 나뉜다. 처음에는 똑같은 유세객이었지만 결과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인다. 당선하자마자 초심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성공에 취해 이상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사람도 있고, 낙선과 동시에 폐인이 되어 하늘을 탓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맹자는 유세에서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만났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당시 유세객이었던 송구천(宋句踐)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성공해도 효효(효효)하고, 실패해도 효효(효효) 하시게.’ ‘효효’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상황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득(自得)의 모습이다. 당선되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효효하게 갈 것이며, 낙선되면 마음의 흔들림 없이 나를 수양하며 효효하게 살라는 당부였다. ‘선비는 실패해도 원칙을 버리지 않기에 당당한 자신을 얻고(窮不失義士得己焉, 궁불실의사득기언), 성공해도 자기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백성들이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達不離道民不失望, 달불리도민불실망).’ 실망(失望)이란 당선되기 전에 그토록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던 사람이 당선되면 돌변하여 사람들의 희망(望)을 잃게(失) 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론 찬밥과 나물을 뜯어 먹으며 살 수도 있고, 비단옷을 입고 음악을 들으며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찬밥에 나물국을 먹든, 비단옷에 화려한 음악을 듣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후에 당선과 낙선을 만날 후보자들에게 한마디 미리 전하고 싶다. 낙선되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고 수양하며 효효하게 살 것이고, 당선되면 부디 초심을 잃지 않아 국민을 실망(失望)시키는 일은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실망하는 국민을 보는 일은 공직자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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