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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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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까치밥- 정민주(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24-01-25 19: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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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담벼락에 달린 홍시가 눈에 들어왔다. 매서운 바람에 재촉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까치밥이었다. 겨우내 굶주릴 새들을 위해 홍시 몇 개를 남겨둔 주인장을 생각하니 마음이 이내 넉넉해온다. 선조들은 잘 익은 감이나 대추 등을 수확하면서 까치 몫을 남겨뒀다. 까치든 까마귀든 직박구리든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몸과 마음을 채워주는 양식이 되라는 의미다.

    ▼추사 김정희 역시 남김의 미학을 후세에 물려주었다. 일암관에 추사의 ‘유재(留齋)’ 현판이 걸려있다. 이 현판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쓴 것으로 ‘남김을 두는 집’이란 뜻이다. 풀이는 다음과 같다. 다 쓰지 않은 기교를 남겨서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녹을 남겨서 나라에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재물을 남겨서 백성에게 돌려주고, 다 쓰지 않은 복을 남겨서 자손에게 돌려주라.

    ▼정치계에서 까치밥으로 회자되는 이들이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대구 수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에서 승전보를 알렸다. 이를 두고 혹자는 거대 양당이 각자의 텃밭에서 ‘싹쓸이’하지 않고 이들을 당선시킨 마음이 까치밥을 주는 이와 같다고 말했다. 애석하게도 정치판에선 까치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공존을 외치다가도 정당마다 유리한 지역에서 일사불란하게 ‘전석 석권’, ‘싹쓸이’를 외친다.

    ▼풍요로운 세상에 살지만 여전히 나눔에 인색한 이들이 많다. 제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인 경우도 왕왕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까치밥의 의미를 저마다 가슴에 새기면 좋겠다. 총선이 두 달여 남았다. 이번엔 특정 계층이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과 성별, 세대가 다채로운 선거가 되면 어떨까. 송수권 시인은 까치밥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도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라 말했다. 날짐승에게도 내어주는 넉넉함을 이번 총선에서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정민주(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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