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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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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헤어질 결심-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 기사입력 : 2024-02-15 19: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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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 우리 이혼합시다!” 마부의 아내는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헤어질 결심을 통보했다. 마부는 갑작스런 아내의 이혼통보에 당황했다. 제(齊)나라 재상인 안영(晏영)의 마차를 모는 직업은 비록 신분이 낮은 일이기는 하나 제나라 강력한 실세 안영을 모시는 일이기에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에게 잘 보이려 했다. 마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을 통보받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혼 사유를 찾을 수 없었던 마부는 아내에게 왜 헤어지려 하는지 물었다. “당신은 재상을 모시는 마부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장에서 본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제나라 실세인 안영은 겸손하게 마차를 타고 있는데, 당신은 권력의 실세인 양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마차를 몰고 있으니 당신의 아내로서 창피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머리를 조아린 게 아니라 마차에 타고 있는 권력자에게 한 것인데, 주제도 모르고 권력의 주변에서 함께 누리려 하니 그것이 제가 당신과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입니다.” 사마천 〈사기〉 안영과 마부의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권력의 주변에는 늘 주변실세가 있다. 권력자는 이미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조심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권력의 주변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사람이 많다. 권력자의 배우자, 친척, 비서실 직원, 수행 기사,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은 모(母)권력의 주변에서 자(子)권력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권을 가진 사람들은 늘 자(子)권력 주변에 모여든다. 명품과 뇌물로 유혹하기도 하고, 아부와 아첨으로 달래기도 한다. 잠깐 잘못하면 무심코 받은 뇌물과 청탁 수락에 모(母)권력이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한다. 권력이 무너지는 것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 기생권력에서 시작된다는 예는 역사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환관과 외척들, 십상시와 측근들, 권력에 기대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주변 실세들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족속들이었다. 내부 단속을 하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 결국 화를 키웠던 것이다. 돈이 많은 부자거나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은 의외로 교만함이 적다. 실세가 교만하면 그만큼 잃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귀한 사람보다 더욱 교만한 사람들은 그들의 측근이나 주변사람들이다. 오늘 나는 어떤 부귀한 자와 만났고, 누구와 점심을 같이 먹었고 떠드는 사람 치고 정말 실속 있는 사람이 드물다. 대부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다른 사람의 명성에 기대어 자신을 돋보이려는 사람들이다.

    아내의 헤어지자는 말에 마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부터 마부는 자신의 몸을 낮추고 겸손하였다.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한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개과천선하였던 것이다. 평소와 달라진 마부의 모습을 본 안영은 그 이유를 물었고 마부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안영은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그의 교만함을 접은 마부를 기특하게 여겨 대부(大夫)의 벼슬에 천거하였다. 일개 마부에 불과했던 마부가 아내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대부의 벼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역사 기록을 읽다 보면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마부가 멋있다.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고친 마부는 멋진 사람이다. 안영은 더 멋있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의 변화를 인정해 줄줄 아는 상사였다. 그러나 가장 멋진 사람은 마부의 아내다. 현명한 아내가 위대한 남편을 만들었다. 남편에게 옳은 길이 무엇인지 몸소 가르쳐주었던 마부 아내의 용기는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배우자의 부정을 알면서 눈감거나 조장하는 사람은 그의 행동이 결국 부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잘못한 것을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으로 충고한 마부의 아내가 되어야 사람들의 용서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 시대에 그런 마부와 아내를 보고 싶다.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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