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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지역서점 예산 삭감 예고를 지켜보는 책방지기- 채도운(작가·서점 보틀북스 대표)

  • 기사입력 : 2024-04-18 19: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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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서점은 매달 20개가 넘는 독서모임을 비롯하여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방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작가님을 초청해 북토크쇼를 하기도 하고, 지역민들을 ‘일일 책방지기’로 고용하여 공간을 함께 꾸려나가기도 하며, 지역 공예가·예술가와 함께하는 원데이클래스, 여러 소상공인과 함께하는 북마켓 등의 굵직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고작 8평 남짓한 서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도움이 크다.

    정부나 지자체의 공모사업은 여러 목적이 있을 테지만, 나는 공모사업의 진정한 목적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직접 하기 어려운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것, 공무원들이 발 벗고 나설 수 없는 부분을 섬세하게 챙겨주는 것, 조직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무수히 많은 기획들을 실험해 보고 실현해 보는 것. 그래서 나는 공모사업이 단순히 예산을 교부받는 것이 아니라, 협업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나는 나의 정확한 위치를 깨닫는다. 예산을 주고받는 시점부터가 ‘갑’과 ‘을’의 위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정부의 지역서점 예산 삭감 소식에 ‘반대한다고 말해서 괜히 미움사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부터 했다는 사실을, 한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말에 ‘서점 블랙리스트가 있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부터 했다는 사실을, 오늘 글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든다.

    지역서점 지원은 예산 투입 규모에 비해 효과가 큰, 가성비 사업으로 불리는데 나는 ‘가성비’라는 말이 어쩐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노동력을 밤낮 할 것 없이 ‘무상’으로 빌려야 했고, 동네서점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애정 어린 지역민들의 손길을 ‘무료’로, 그것도 빚진 마음으로 받아야 했다.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매 일상을 문화롭게, 매일을 따스하게’ 모임을 운영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예산을 따냈다. 기획서를 쓰고, 예산을 짜고, PPT를 만들고, 면접 보고 발표하는 이 공모사업의 일상을 당연한 서점의 의무처럼 받아들였다.

    서점을 붙잡고 있는 이 미련의 끈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결론은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사람이 좋았다. 책이라는 공통된 취미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마냥 좋았다. 저마다 빛나는 그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늘 따스한 응원과 격려, 위로를 건네는 그들을 통해 매 일상을 견디어 냈다. 슬픔, 분노, 짜증, 웃음 그 모든 감정을 낯선 타인과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그들과 손님에서 이웃이 되고, 이웃에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의 힘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서점을 붙잡고 싶었다. 우리가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고, 연결될 수 있었던 이 공간을. 매달 20개가 넘는 독서모임과 북토크쇼, 각종 프로그램들은 개인이자 타인인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가는 소중한 계기였다. 공간이 생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경이자 우리네 장소를 유지하기 위한 활력이었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예산에 기대지 말고 자생력을 갖고 프로그램을 운영해 봐라’라는 말은, 서점의 수익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 자생력의 배경에는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그 누군가는 분명 서점만이 아니다. 비용을 전가받는 모두, 돈 때문에 문화를 포기하게 되는 그 누구가 있다.

    채도운(작가·서점 보틀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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