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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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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어글리 코리아의 방관자들

  • 기사입력 : 2001-0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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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 세계 최고라는 기록은 여러 분야에 걸쳐 많다. 양주 소비량이 그
    렇고 고급 모피 최대 수입국이란 오명을 쓴지 오래됐다. 다이아를 비롯한
    보석 최대 수입국이고 홍콩의 가짜상품 가게의 최대 고객으로 정평이 나있
    다. 인터넷 이용률이 최고라 해서 첨단을 걷는 국민으로 생각했더니 실상
    은 게임이나 성인 사이트 검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한다. 생산적인 것보
    다 소비적이고, 그것도 퇴폐적인 것에서 단연 정상위치에 서 있다. 어글리
    코리아의 요인들이다.

    부정적인 기록은 그것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가운
    데 사고나 상해로 사망하는 어린이 비율이 최고라는 공식적인 기록이 나왔
    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91년 이후
    5년동안 15세 이하의 어린이 사망률은 한국이 10만명당 25.6명으로 최고를
    차지했다. 2위 맥시코의 19.8명에 단연 앞서고 가장 낮은 스웨덴의 5.2명에
    는 5배, 인근 일본의 8.4명에 비해서도 부끄러운 수치다. 어린이 사망 최
    대 원인은 교통사고와 안전재해를 꼽는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난 99년 6월의 씨랜드
    화재참사를 보탠다면 한국은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공포의 나라로 인식될지
    도 모를 일이다.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나라에서 살고싶지 않아요."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자식을 잃고 이민을 떠나면서 남긴 한 부모의 피눈물 섞인 말이
    다. 자식을 안심하고 키울 수 없다는 자책감으로 고국을 떠났지만 그렇다
    고 악몽을 떨친 것은 아니다. 『부모는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는 말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한이 되
    어 가슴에 남게 마련이다.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이유는 우리 사
    회에 희망을 걸 수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녀 교육』문제가 단연
    압도적이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투입하면서도 경쟁사회에서 제대로 이길 자
    신이 없고 각종 재해로 안심하게 키울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없는 사회, 마음껏 기개를 펼 수 있는 환경,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선진국에서 자식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어찌 사치스럽다고만 할 것
    인가. 자식을 키우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려는 사람들의 선택이 어쩌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地緣과 學緣, 血緣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
    한 방편으로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다. 이를 위해 청소년 시절을
    고스란히 입시 지옥에서 희생해야 하는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굴레에
    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발상이 앞선 사고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에는 조
    기교육 열풍에 휩싸여 유아부터 영어교육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로
    인해 가계 지출비 중 사교육비 비중은 천정부지로 뛰어 연간 20조원을 넘어
    섰다. 『내 아이만은 특별하게 키우겠다』는 부모의 욕심만 나무랄 일도 아
    니다.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부모의 기우와 안전하게
    키워야겠다는 염려를 외면할 수가 없다. 자녀교육이 집을 장만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양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창의력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개혁은 미적거리고 있는 사이, 머리 색
    깔에서 옷패션까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 외양의 변화만큼이나 생각도 달
    라졌다. 결국 대학입시의 지옥을 탈피하고 발랄한 젊음을 마음껏 만끽하려
    는 창의력의신세대 욕구를 어른들만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 환경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자녀에게만 매달리다시피 집중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잘못된 가치관에 일그러진 환경
    의 부산물이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안전사고로 인해 지불되는 막대한 비용
    은 국력을 소모시키고, 그럼에도 『과연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를
    놓고 끊임없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확실한 나라. 자녀들을 가르는데
    드는 비용만큼 능력이 발휘되는 안전사회도 아니라면 이 나라는 무엇을 기
    대할 수 있는 곳인가. 아이들을 기르는 자정능력조차 상실했다는 평가앞에
    우리의 무능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글리 코리아를 홀리(Holy=거룩
    한) 코리아로 바꿔야 할 책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음에
    도 우리는 언제까지 방관자로 남아 있을 것인가.성재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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