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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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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투표장 가는 길

  • 기사입력 : 2006-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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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마(出馬)란 말은 원래 무관을 뽑는 무과시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무과시험이 엄격할 때는 말을 타고 나가 20보 밖의 거리에서 여섯 발을 쏘아 과녁에 네발 이상을 맞혀야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과에서 뽑는 숫자가 크게 늘어나자 합격 기준도 형편없이 낮아 졌다. 여섯 발을 쏘아 한 발만 맞혀도 합격으로 쳐주기도 했고. 말을 탈줄 몰라 소를 대신 타고 활을 쏘게 한 경우도 있었다. 활시위도 당길 줄 모르는 사람. 병서 한 줄 읽지 못하는 무관이 허다해 국방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5.31 지방선거판에 자신의 재능을 시험받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나섰다.

      예전과 달라진 건 주민들이 표(票)를 던져(投) 이들을 가려내야 한다. 단순히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던져야 하는 이유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투표일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 왔지만 지역에 따라 부동층이 40% 안팎이다. 투표율도 그리 높을 것 같지 않다. 찍을 사람이 마땅찮다거나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고. 또 하나마나한 선거라는 게 주된 이유다. 마치 초연한 듯 정치엔 관심이 없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아예 부부동반 나들이 계획을 자랑삼아 떠벌린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내년 대선부터 투표용지를 복권으로 만든다거나 투표자들에게 상품권을 주는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 싶다.


      ‘투표장 가는 길’이 ‘경마장 가는 길’보다 재미가 있을 리 없다. 더욱이 이번 선거판은 ‘투표부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투표용지만 여섯 장이고 색깔도 연두색. 밝은 노란색. 연한 노란색. 흰색. 청회색. 하늘색 등 6가지다. 기초·광역의원. 시·도 비례대표. 기초·광역단체장까지 합쳐 ‘붓두껍’을 6번 눌러야 한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터라 일일이 가려 낼려면 재미는 커녕 귀찮을 만도 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경마장과 투표장은 닮은 점도 적지 않다. 경마를 위해선 정확한 데이터와 분석력을 갖춰야 한다. 기수와 말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 ‘배팅’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투표를 위해서도 후보자들의 면면을 따져야 하고 ‘소문’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신중을 기해 찍어야 한는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경마가 스릴을 즐기고 배당률에 신경을 써는 것과 같이 내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지. 몇 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돈(세금) 들여 잘만 뽑으면 더 많은 혜택(배당)을 누릴 수있다. 또 경마가 대박을 노리다 쪽박을 찰 수 있고. 투표장에서 표를 잘못 찍었다간 두고 두고 후회할 수 있는 것도 닮았다면 닮았다. 다만 경마로 망치면 자신과 가족에게 피해가 있지만 투표는 내 이웃에 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차이다. 내년 7월부터 주민소환제 도입으로 불량인사들을 리콜할 수 있으나 소환 요건이 번거롭고 다시 선거를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어 첫 단추를 잘 꿰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마장 등에 나들이 하는 것 못지않게 투표도 재미있고 더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투표장 가는 길’은 사실 멀지 않다. 산보하는 기분으로 잠시만 짬을 내면 된다. 이제부터라도 언론매체나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서 판단자료와 정보를 챙겨보자. 집으로 배달되는 선거홍보물 체크는 유권자로선 최소한의 도리다. 그래도 이게 귀찮다면 후보들이 건네는 명함을 쓰레기통에 던지기 전에 한번 더 눈길을 주자. 지나가다 선거벽보 앞에서라도 잠시 머물자. 투표는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거나 지역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지방자치를 이룰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얘기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터라 접겠다. 노파심에 한시(漢詩) 한 줄 옮긴다. 苟得其人 雖仇必擧. 苟非其人 雖親不授. (구득기인 수구필거. 구비기인 수친불수. 그가 정녕 적격자라면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반드시 뽑을 일이며. 그가 정녕 적격자가 아니라면 비록 가깝다 하더라도 일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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