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8일 (일)
전체메뉴

고수 "'황금의 제국' 멜로 없어서 좋았어요"

  • 기사입력 : 2013-09-16 16:13:33
  •   


  • "드라마는 계속 멜로만 많이 했잖아요. 이번엔 멜로가 없어서 좋았어요. 만날 사랑에 죽고 살고 모든 걸 바치고 걸고 하다가 '장태주'란 인물을 연기하며 나한테도 또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장태주'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고수는 지난 10일 논현동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그의 말마따나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2009) '백만 장자와 결혼하기'(2005), '그린 로즈'(2005), '남자가 사랑할 때'(2004) '요조숙녀'(2003), '순수의 시대'(2002), '피아노'(2001)까지 그의 주연작은 모두 멜로와 로맨스 드라마였다. 다비드상처럼 깎아놓은 듯 잘 생겼다는 뜻으로 '고비드'란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여성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로맨스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9년 데뷔해 어느덧 배우 경력 15년차를 맞는 그에게 비슷한 패턴의 멜로 연기는 물릴 만도 했다.

    그래서 그는 SF스릴러 장르의 영화 '초능력자'(2010)나 대하 서사시 같은 전쟁 영화 '고지전'(2011) 같은 작품으로 다른 연기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다.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그의 의지는 이번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꽃을 피웠다. 시청자들에게 고수가 더이상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에 머무르지 않고 분명한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됐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를 3년 만에 다시 안방극장으로 데려온 사람은 '추적자 THE CHASER'에 이어 '황금의 제국' 극본을 쓰고 있는 박경수 작가다.

    "'추적자'는 뒤늦게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야기 안으로 시청자를 데리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죠. 보다 보면 빠져드는 힘이 있었고요. '황금의 제국' 대본을 받고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 태주로 저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기업이나 경제가 나오는 드라마는 저도 처음이었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거니까 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7월 1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황금의 제국'은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20년간 거쳐온 신도시 개발과 부동산 호황, IMF, 구조조정, 벤처 열풍과 카드 대란, 세계 금융 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사의 격동을 그렸다.

    고수가 맡은 주인공 장태주는 신림동 판자촌 출신으로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돈의 힘을 손에 쥐기 위해 국내 최고 재벌 '성진그룹'의 아성에 도전하는 인물이다. 뛰어난 지략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가로 변신한 뒤 성진그룹 오너 가족 내 권력 다툼과 국내외 경제 상황을 이용해 성진그룹의 지분을 손에 넣고 성진그룹을 완전히 갖기 위해 정략 결혼까지 서슴지 않는다.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장태주란 인물을 고수는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보여주고 있다.

     
    "힘들다는 얘기는 잘 안 하려고 했는데, 정말 힘들긴 해요(웃음). 어제(9일)가 특히 대사 분량이 많았던 것 같아요. '멘붕'(멘탈 붕괴)이죠. 매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4일간 촬영하는데, 월요일에 끝나면 몸무게가 4㎏씩 빠져있어요. 금요일에 들어갈 때는 다들 얼굴이 좋은데, 월요일 밤쯤 되면 얼굴 볼살이 다들 쏙 들어가요."

    경제와 관련한 어려운 대사들을 외우기도 어렵지만, 극중 인물들의 칼을 품은 듯한 말들과 비꼬는 말투가 더 어렵다고 했다.

    "모든 인물들이 직접 표현하지 않아요. 둘러서 비꼬니까 연기자들도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편하게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피곤한 말과 행동들을 많이 하니까 막히고 힘들 때가 있어요. 인간적으로 너무 슬픈 상황들이 벌어지니까요."

    대본에 별 설명이 없는 것도 그의 고민을 깊게 한다고.

    "작가님 스타일이 대본에 지문(설명)을 거의 안 쓰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다 제가 알아서 하는 건데, 태주란 인물이 폭이 넓은 것보단 깊다는 느낌이거든요. 어떤 선을 넘어가면 다른 인물이 돼버리니까 좁은 범위에서 하다 보니 새로운 표현을 하기가 어려워서 고민이 많이 돼요. 사람을 쪼으는 연기라고나 할까요(웃음)."

    매일 쪽대본을 받고 촬영에 들어가는 상황이지만, 작가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단단했다.

    "멋진 대사들이 정말 많잖아요. 한 사람의 생각을 그렇게 깊이 표현하기도 힘든데, 여러 인물의 생각을 그렇게 쓴다는 게…작가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매회가 재미있으니까 대본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어요. 대본을 보면 이렇게까지 글을 쓰고 있는 분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잘 표현할까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는 드라마 방영 초기 박경수 작가와 만났던 일도 들려줬다.

    "제가 연기하다가 조금 힘들었을 때가 있어요. 4부인가 5부쯤 했을 때인데, '태주가 너무 나쁜 악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죠. 그런데 마침 그날 새벽에 작가님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 '지금 만납시다'라고 하셔서 새벽 두 시 넘어서 한강에서 뵈었어요. 작가님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셨나봐요. 그래서 제가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어떻게 구분돼 있겠냐, 누구나 다 양면을 갖고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눈빛으로 보냈죠(웃음)."

    전체 24부작 중 22회가 방영됐고 단 두 편만이 남아있다. 그 역시도 누가 최후에 살아남을지 궁금하다고.

    "매일 식탁에서 밥먹는 신이 있잖아요. 거기서 한 명씩 사라지거든요. 우리 배우들끼리 그래요. 다음엔 누굴까(웃음)."

    이번 작품은 그에게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언젠가는 해야 될 작품이고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더 높은 산에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된 것 같아요. 그동안 연기하면서 방황을 많이 했는데, 그런 고민을 할 때 이 작품을 만나서 정리할 수 있었어요. 뭘 도전하는 데 있어서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까지 왜 이렇게 내가 조심스러웠나,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생각이 많았나 하는 후회도 했고요."

    드라마를 끝내고 잠시 쉰 뒤 그는 전도연과 함께 주연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올해 말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연합뉴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