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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독고다이 홍준표’는 그럴 리 없을 거야- 정오복(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3-12-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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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세 봉건시대에는 가신제(家臣制)로 권력과 질서를 유지했다. 가신은 충성했고, 주군은 그들을 비호하고 권력을 나눠줬다. 특히 일본의 주군-가신 관계가 드라마틱한데, 사무라이(무사)가 일본 봉건제도의 핵심이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충성도가 철저했던 사무라이. 그러나 이들도 원래는 이토록 충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초기 사무라이에게는 주군을 바꿔 다른 주군을 모실 수 있는, 하극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끌려간 성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군과 생사를 같이한다’, ‘주군이 주군답지 않아도 가신은 가신다워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생겼다는 주장도 한다.

    어쨌든 우리에게 알려진 사무라이는 생각의 틀은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주군의 입장에 맞추고, 주군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기꺼이 백성들을 칼로 다스리는 존재였다. 설령 주군이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모두 떠안을 각오마저 돼 있었다.

    #. 1997년 2월 ‘한보 비자금 사태’가 불거지면서 한국의 가신정치가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정치권 내 자기 반성도 있었는데, 특히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3金 중심’의 붕당정치를 깨트리고 선진정치를 실현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들 중 당시 신한국당 홍준표 의원은 “과거 민주화 투쟁 시기에는 가신정치가 필요했을지 모르나 지금까지 가신정치를 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한보사태가 마무리되면 이 같은 구 시대적 정치관행도 함께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공개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한 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 비밀결사체적인 정치 행태를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7년이나 지난 뒤에 봐도 “역시 독고다이 홍준표야!’라는 탄성이 나오게 한다.

    #. 지난 5일 경남도 감사관이 창원시에 대한 정기 종합감사 결과를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정기감사의 경우 통상 감사결과를 감사관실 홈페이지에 올리고, 해당 기관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그런데 경남도는 “(이번에) 검찰에 수사를 의뢰함에 따라 언론사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개별취재보다는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브리핑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창원시는 이날 오후 곧바로 반박회견을 가졌다. 앞서 지난 10월 경남도의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가 산정기준 갈등에 이어 두 번째 충돌했다. 창원 부시장은 “전례 없이 과도하게 언론에 공개하는 저의를 알 수 없다”면서 “사실이 아니라면 경남도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이렇게 진행되면서 감사결과 발표 자체가 내년 도지사선거 경선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형식은 감사결과 브리핑을 취했다 하지만, 내용은 ‘표적 감사’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정권 혹은 권력 교체기가 되면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공무원은 종이 한 장(인사장)이면 날아간다’란 자조적(自嘲的)인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독고다이 홍준표’라면 아무리 승부가 긴박할지라도 공무원을 가신처럼 부리는 표적 감사와 같은 치졸한 방법을 쓰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또한 소주잔을 기울이며 겪어본 경남도 감사관의 성품으로 볼 때, 정치와 행정의 경계선에 서서 눈치나 보는 줏대 없는 공무원은 아닐 것 같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한 것은 공무원들을 조롱하거나 중요성을 폄훼하고자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공무원들이 정책 입안과 집행시 정치적 판단은 최대한 배제하고, 입법부에서 만든 법률과 이에 기초한 각종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비록 인간의 속성이 권력지향적이라 하지만, 경남도 공무원만큼은 다르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시빗거리가 될 만한 사소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길 바란다.

    정오복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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