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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떼일라- 이병문(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4-01-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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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이 속담만큼 말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있을까.

    어릴 때 배웠던 이 말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어른이 된 후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당선된 공직자들의 말 바꿈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속담을 곰곰이 씹다 보니 말만 번지르하게 하면 뭐든 된다는 부정적인 교육효과도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들었다.

    말을 하는 이는 상대이고 이를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 허튼소리에 속아 천 냥 빚을 낸 것으로 정리해도 개인 간 거래나 흥정에서는 탓할 일이 아니다.

    다만, 말본새만으로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하기엔 세상이 복잡한 데다 오는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일꾼을 뽑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직자의 말에 대해 몇 가지 짚었으면 한다.

    첫째, 표로 뽑힌 이들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언론이 미주알고주알 보도하는 이유는 선출직의 말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어디에 살든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이 땅에서 모든 결정은 ‘법’에 근거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의 생각을 표현한 말은 곧 입법에 반영된다. 그 법이 제정되면 정부는 시행령(대통령령)과 시행규칙(부령)을 만들고 광역시·도와 시·군·구, 해당 의회는 관련 조례와 규칙을 만들거나 바꾸는 등 후속작업에 나선다.

    문제는 성문법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와 시·군은 행정행위 과정에서 재량권이 발동한다는 데 있다. 단체장의 입에서 나오는 검토나 추진 등이 그렇다. 한걸음 나아가 이 말은 지침으로 별도 관리돼 해당 공무원이 후속 행정 절차를 진행한다.

    이 같은 엄중한 현실에도 단체장 등 공직자들은 눈앞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소신을 버리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 유권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둘째, 공직자의 거짓말은 척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듯 단체장의 말은 종국엔 법이 된다. 말은 법이고 법은 곧 정의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가 바로 선 국가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면 정치적 파산을 선고해야 한다. 유권자든 언론이든 그 근원을 따져 거짓말하는 입을 가진 자는 공직에 진출하지도, 자리를 지키지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보기다. 이 사건은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되면서 비롯됐다. 당초 닉슨은 도청사건과 백악관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그러나 대통령 보좌관 등이 관계하고 있음이 밝혀졌고, 닉슨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됐다. 대통령 탄핵 결의가 1974년 8월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가결됐고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거짓말이 결국 그를 권좌에서 쫓아낸 것이다.

    두 가지 기준에서 볼 때 국내 현실은 어떤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보에 자신의 학력 등을 허위로 작성하면 선거법에 따라 당선이 취소된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해, 즉 당선을 목적으로 거짓 공약을 발표하면 아무런 제재가 없다. 선거법 위반 처벌도 없고 누구로부터 민·형사상 소추도 받지 않는다.

    주민투표 등 제재수단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당선은 곧 권력이고 브레이크 없는 권력은 추진과 검토라는 속임 말로 권한을 남발한다.

    국민의 마음이 관대하고 살림살이가 좋아져서 그렇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한 번도 거짓말이 처벌을 받거나 자릴 내놓지 않은 ‘잘못된’ 학습효과 때문이라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거짓말 한마디에 속아 천 냥 빚 떼일까 두렵다’는 자조가 올해 지방선거 이후에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이 때문이다.

    이병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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