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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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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이 시대 대학생들의 자화상

둥우리족·알부자족·고공족…그들의 눈에 비친 ‘또 다른 나’
“학생신분 끝나는 게 두려워요”
“돈을 벌지 않으면 학교 쉬어야…”

  • 기사입력 : 2014-01-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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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오늘을 사는 대학생,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졸업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해 대학교를 5년째 다니는 둥우리족부터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생활이 된 알부자족까지….

    이 같은 시대를 반영하듯 둥우리족, 알부자족, 고공족 등 대한민국 대학생을 빗댄 은어가 다양하다.

    4학년 진학을 앞둔 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생 3명이 같은 세대를 호흡하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민낯으로 만났다.



    김준(오른쪽) 씨가 대학 앞 카페에서 심정을 말하고 있다.



    ◆둥우리족(대학을 둥우리 삼아 졸업하지 않는 학생)

    김준(27·가명) 씨는 지난 2007년 경남지역 A 대학교에 입학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이맘때 졸업해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김 씨는 일명 ‘둥우리족’이다. 졸업 유예를 위해 1학점을 남겨두고 대학교 5학년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1년 동안 휴학도 했다”면서 “그동안 공무원 공부도 해보고 토익, 학술이나 경제동아리 활동 등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딱히 이력서에 내놓을 만한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높은 학점과 토익점수를 갖췄지만 실무와 관련된 자격증이나 공모전 입상 경력 등의 스펙을 갖추지 못해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내 주변에서도 곧바로 취업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그 사람도 학기 중에 여러 번 휴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학과라 기업의 재무팀이나 금융권으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는데 자격증 3~4개는 기본이다. 자격증 공부만 해도 버거운데 모든 학생들이 갖추고 있는 스펙이니 차별화된 뭔가가 필요하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많은 학생들이 졸업유예를 필수로 여긴다. 학기 중에 어학점수를 따는 것이나 대외활동은 버겁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2009~2013년 5년간 졸업생 등록 학기 수 현황’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전국 국립대 13곳 23만4311명의 졸업생 중 9학기 등록 후 졸업한 학생은 7만9451명(33.9%)에 이른다. 10학기 이상 등록 후 졸업한 학생도 2만7749명(11.8%)으로 나타났다. 졸업생 중 거의 절반이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5학년’이 된 셈이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긴데 기업에서는 졸업한 학생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졸업 후 1년 동안 취업을 못하면 기업에서 그 학생을 안 뽑는다는 의견이 많고 자칫 준비가 덜 되고 게으른 학생처럼 보인다”고 했다.

    “차라리 유예해 학생신분을 유지하면 그동안 학과공부를 했다는 최소한의 변명거리라도 생기고 그 변명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학교라는 둥우리 안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그의 자조적인 변명은 또 다른 우리의 얼굴이다.

    김초온(언론현장 실습생·창원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이소연 씨가 경남종합사회복지관에서 국가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알부자족(알바로 부족한 학비를 보태는 학생)

    ‘실속 있는 부자’라는 뜻의 알부자.

    대학교에도 알부자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알부자는 당신이 생각하는 알부자가 아니다. ‘알’바(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돈을 ‘부’족한 학자금에 보태는 학생을 뜻한다.

    창원문성대학에 다니는 이소연(22) 씨는 ‘알부자’다.

    겨울방학을 맞아 경남종합사회복지관에서 교외 국가근로를 하고 있는 이 씨의 꿈은 사회복지공무원이다. 공무원 시험의 응시자격 가운데 하나가 복지사 자격증을 갖는 것이다.

    다행히 이 씨는 학과 특성상 졸업과 동시에 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응시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비싼 등록금이 걱정이다.

    그는 “우리 대학은 사립대학 중에서도 등록금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그래도 200만 원이 훨씬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등록금 때문에 4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다행히 지난 학기에는 학비를 전액 면제받아 그 이상 대출은 받지 않았다.

    150여만 원이 빚으로 남아 있는 이 씨는 빚을 더 늘리지 않기 위해 국가근로 신청을 했지만 근로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이번 방학에는 다행히 국가근로를 하게 됐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근로를 하고 싶다는 이 씨는 “학자금 대출 빚도 있고 돈을 벌지 않으면 학교를 쉴 수밖에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학비만큼은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지난 학기처럼 장학금을 받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지만 장학금 받는 것이 쉽지 않아 자칫 학교를 쉬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빨리 취업하고 싶다”며 “등록금 때문에 학교를 쉬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쓴웃음을 보이는 이 씨의 말 뒤로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글·사진= 이원우(언론현장 실습생·창원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신동완 씨가 독서실에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고공족(고시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도내 B 대학교에 다니는 신동완(28·가명) 씨.

    그는 여느 때처럼 오전 7시에 눈을 떴다. 가방을 챙기고 빵 하나, 우유 하나를 편의점에서 집어 든 채 발걸음을 옮긴다.

    햇수로 4년째 그와 함께하고 있는 독서실의 빛바랜 책상과 의자.

    그는 “때론 방보다 이곳이 더 편한 것 같다”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신 씨는 “처음엔 경험 삼아 치던 공무원 시험이 이제는 내 인생의 전부가 됐다”라고 했다.

    신 씨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는 “컴퓨터를 만지는 게 좋았다”면서 “게임이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든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어서 훗날 잡스처럼 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엔 수능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놀기에만 급급해 스펙이 될 만한 뭔가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아차 싶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20대 중반”이라고 덧붙였다.

    신 씨는 “토익 성적도, 그렇다 할 자격증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면서 “지금은 지금껏 공부한 게 아까워서 다른 일을 찾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이 술 한잔 기울일 친구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서른이라는 서러운 숫자만 가까워 오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곧 설인데, 고향에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신 씨는 공무원 시험을 3년째 응시 중이다.

    신 씨와 같은 학생을 ‘고공족’이라고 부른다. 일찌감치 고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대학생을 일컫는 말이다.

    명문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지금, 나이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는 공무원 시험이 각광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취업난에 허덕이다 꿈마저 잃어버린 대학생의 또 다른 얼굴이다.

    글·사진= 박해철(언론현장 실습생·창원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전문가 의견 “목표 설정·취업준비, 기업-학교 협력 필요”

    박지희 창원대 종합인력개발원 취업지원팀장은 “졸업 유예는 학생들이 진로 설정과 취업 준비를 늦게 시작함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이라면서 “특히 지방대 학생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진로 설정과 취업 준비를 4학년이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니 학기를 연장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며 “스펙을 쌓을 때도 진로와 관계없는 대외활동이나 자격증을 준비하기보다는 해당 직무와 관련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영표 경남발전연구원 부원장은 기업의 고용구조 시스템과 인력 시장 발전 속도의 괴리를 원인으로 꼽았다. 김 부원장은 “사람의 교육 수준과 역량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기업의 고용구조 시스템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계약학과(국가, 지자체, 기업 등의 요청에 따라 대학이 이들과 계약을 맺고 설립하는 특정분야의 정규학과)를 설립해 기업과 그 인력을 공급하는 학교 간의 화합을 이루면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해철·이원우·김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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