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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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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선우후락(先憂後樂)- 하승철(경남도 경제통상본부장)

백성이 먼저 즐거워야

  • 기사입력 : 2014-01-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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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 768년 십수 년간 떠돌던 57세의 시인은 말로만 듣던 악양루에 올라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호수 위에 떠있는’ 동정호의 광활함에 감탄한다. 그리고 ‘전쟁이 계속되어 친구와 가족의 소식마저 끊어지고, 호수 위의 배처럼 외로이 늙어가는 신세가 한탄스러워 누대에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교과서에도 실린 두보(杜甫)의 <등악양루> 내용인데, 신산(辛酸)한 인생을 산 지식인의 슬픔이 구구절절하다. 이후 2년간 물 위에서 방랑하던 그는 이 시처럼 동정호의 배 안에서 병을 얻어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280여 년 후, 부패한 송나라를 바로잡으려다 지방으로 좌천된 재상 범중엄이 친구인 파릉군수의 청을 받아 악양루 개수기에 이렇게 쓴다. ‘옛날의 인자(仁者)들은 조정에 있을 때, 천하의 근심보다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김보다 나중에 즐겼다’라고. 이 선우후락(先憂後樂)의 구절은 공직자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으로 많이 인용되기도 했다. 신선에게 받은 술을 백성들이 먼저 마시게 한 후에 자기도 마신다는 정철의 <관동별곡>의 한 구절이 그 한 예이다.

    하동 악양면에도 동정호가 있다. 오래전의 동정호는 섬진강의 범람을 완충하던 넓은 늪지 호수로, 소강과 상강이 만든 중국 동정호와 비슷한 모양이어서 그 이름이 차용됐던 것 같다. 3년 전 대대적인 정비를 한 동정호는 평사리 들판의 부부송이 하나로 보이는 곳에 악양루를 배치해 슬로시티 악양의 풍광을 더하고 있다. 관광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명소가 하나 더 는 셈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여유를 즐기면서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악양루에는 어지러운 나라 사정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과 지식인의 눈물이 배어 있고, 백성 모두가 즐거워한 후에야 나도 겨우 즐거워할 마음을 내어보겠다는 공직자의 다짐이 묻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경남에서 공적인 일을 하는 이들에게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안해본다. 나를 버리고 진심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쓴 ‘선우후락’이라는 편액을 악양루에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승철 경남도 경제통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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