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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추운 겨울에 살아남기- 이문재(문화체육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4-02-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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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교롭게도 반지하(半地下)다. 습기로 얼룩진 벽에서는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허연 시멘트 바닥을 채운 잡동사니에는 먼지가 뿌옇다. 자리 잡은 방향을 보니 일 년 내내 햇볕 한 번 들어올 것 같지가 않다.애들 의자 크기의 히터가 혼자서 열을 내고 있지만, 썰렁한 공기를 데우기는 턱도 없어 보인다.

    최근 기자가 찾았던 몇몇 지역 화가들의 작업실 풍경이다.

    물론 전부가 이런 것은 아니다. 쾌적하고 널찍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도 꽤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반지하 신세이고,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작가들도 많다고 한다. 한마디로 춥고 배고픈 게 지역 화가들의 현실이다.

    썰렁한 공간에 가장 빛나는 것은 작가들의 눈빛이다. 그리고 작가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이다.

    덕분에 빈 창고나 다름없는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거의 동시에 이들 화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이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솟구친다. 풍족하지는 않은 지역 내 전시 공간이지만, 이들에게 우선되고 또 판매를 통해 작품활동이나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 화가들의 절실한 현실은 경남문화재단이 10개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역 문화예술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 경남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문화예술활동으로 버는 월평균 수입은 약 39만5000원, 미술은 약 42만 원에 불과했다.

    기자의 기대와는 달리 지역 갤러리들은 만만치가 않다.

    지역 A갤러리 운영자의 말이다.

    “지역에 좋은 화가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알리거나, 또 만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미술시장에서 검증되고, 적극적인 전국구 작가들이 밀고 들어오면 이들에게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역 작가의 전시도 모험인데, 굳이 갤러리가 이들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항변이다.

    B갤러리 관계자는 “지역 작가를 우선해 전시를 열고 있지만, 지역 작가와 타지 작가들과는 분명 다르다. 전시가 작품을 내거는 목적뿐 아니라 판매를 염두에 두는 것이라면 상품성을 감안해야 하는데 지역 작가들은 이런 부분이 약하다”고 했다.

    컬렉터들의 눈길이 가고, 또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갤러리 주변의 말을 빌리자면 지역 작가들은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C갤러리 운영자는 “작품활동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왜 스스로를 적극 홍보하고, 또 쉽고 편하게 소장할 수 있는 ‘팔리는 작품’을 내는 데 소홀한지 모르겠다. 프로필과 작품집을 들고 갤러리 문을 두드리는 타 지역 작가들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고 했다.

    갤러리들의 주장에 지역 작가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작가는 ”지역 작가가 지역 갤러리에 전시하면 손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갤러리가 너무 심한 옵션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때론 작가가 굴욕감을 느낄 정도의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분명 타 지역 작가와의 차별이고, 지역 작가를 무시하는 처사다”고 했다. 전시 공간에 목마른 작가들의 약점(?)을 잡아 갤러리들이 너무 후려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따질 생각은 없다.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뭔가 뒤틀려 있고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상해 보이는 예술시장에도 엄연히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고, 작가와 갤러리도 생존(生存)의 선상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추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마음을 고쳐라’ 하기보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누가 먼저랄 것 없다.

    이문재(문화체육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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