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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구를 위한 영리법인약국 도입인가?- 한갑현(대한약사회 사무총장·전 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14-02-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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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6일 발표한 ‘2012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2.5%로 나타났다. 환자가 진료받을 때 100만 원이 나왔다면, 건강보험에서 62만5000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37만5000원은 환자가 부담한다는 이야기다. 62.5%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최근 7년(2006~2012년) 동안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의 증가폭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환자 부담금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OECD 회원국 평균(약 80%)보다 크게 낮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과 제도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해 12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기관의 영리 자회사 운영, 영리법인약국 허용 입장을 밝혔다. 의료기관에서 영리목적의 자회사를 두어 임대업·숙박업·온천업·여행업·서점을 허용하고,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기기·의료용품·건강식품까지 팔게 하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건강보험 적용률이 낮아 환자 부담이 큰 현실에서 추가적인 부담이 늘어난다. 더 큰 문제는 영리법인약국 도입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법인약국이란 대자본이 약국을 지배하는 회사 형태의 약국을 의미한다. 약사만의 법인, 법인당 약국수를 제한하는 장치를 통해 대자본이 들어올 수 없게 막겠다고 하지만 위장자본의 편법적인 투자는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만약 영리법인약국이 허용될 경우 사회와 지역주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첫째, 약값 부담이 증가할 것이다. 법인약국이 허용되면 약국 간 경쟁으로 약값이 내려간다는 주장도 있지만, 재벌형 법인약국은 영리 추구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의약품 과소비와 오남용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법인약국과 경쟁에서 동네약국이 사라지면, 재벌형 법인약국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약값을 올릴 것이다.

    둘째, 동네약국 몰락으로 국민의 약국 접근성이 악화되고 불편이 심화될 것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례와 같이 재벌형 법인약국이 동네약국을 축출할 것이며, 도심 집중 개설로 동네에서의 약국 접근성이 악화될 것이다. 또한 법인약국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주말이나 심야영업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셋째, 약국에서 제공받는 약료(藥療)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것이다. 현재 개인약국은 지역 주민과 신뢰를 바탕으로 건강 상담과 약력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영리법인에 고용된 관리약사는 전문인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기업형 체인약국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윤 추구를 위해 불필요한 의약품 사용을 권장하고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상담업무, 약력관리를 소홀하게 될 것이다.

    넷째,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소비자가 지역 상점에서 100달러를 쓰게 될 경우 자영 상점은 73달러가 지역경제에 남는 반면, 본사 법인이 따로 있는 체인점은 43달러만 남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차이는 지역경제에 남아야 할 돈이 본사 법인으로 송금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헌법 제34조)를 갖고 있다. 지금 국민들에게는 필요한 것은 돈벌이 잘하는 재벌형 법인약국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지켜주고 신뢰할 수 있는 동네 단골약국이다. 약국을 투자활성화 대상으로 삼고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보건의료정책은 대자본에게 국민건강을 헌납하는 것임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갑현(대한약사회 사무총장·전 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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