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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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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두 형제, 오대양호로 헤어진 뒤 42년 만에…

16살이었던 형은 집안 살림 돕기 위해 배 타고 갔다가…
거제 박양곤씨 눈물의 상봉

  • 기사입력 : 2014-02-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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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에서 유일하게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대상자에 선정된 박양곤(54·거제시 장목면) 씨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꿈에도 그리던 형 양수(58) 씨를 42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오랜 세월 생사조차 몰라 애태웠던 형 양수 씨의 얼굴을 42년 만에 마주한 양곤 씨는 기쁨과 설움에 복받친 표정으로 “얼굴을 보게 해줘서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 되뇌었다.

    이들 형제를 갈라놓은 것은 지난 1972년 12월 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쌍끌이어선 오대양호 61·62가 북한 경비정의 공격을 받고 선원 25명이 황해도 해주항으로 전원 나포됐던 이른바 ‘오대양호 사건’ 때문이다.

    장목면이 고향인 양수 씨는 3형제 중 둘째로 집에서는 ‘인술’이라 불렀고, 그가 오대양호 61호의 선원이 됐을 때는 고작 16살이었다. 당시 배에서 막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양수 씨가 납북될 무렵 세상을 하직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생사조차 모른 채 오랜 세월을 눈물로 지새다 1980년에 세상을 떴고, 큰형 양덕 씨도 오래전에 고인이 됐다.

    양수 씨는 어려운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어린 나이에 배를 탔다. 하지만 배가 납북되면서 두 형제는 42년 동안의 세월을 생이별하며 살아왔다.

    동생 양곤 씨는 그동안 형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2000년 8월 오대양호 사건으로 납북됐던 김 모 씨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형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죽기 전에 꼭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형 소식만 기다려 왔다.

    양곤 씨는 상봉 전날 19일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형님은 어린 나이에 집안에 도움을 주려고 배를 탔다가 결국 암울한 세상으로 가게 됐다”며 “부모님은 형님이 눈에 밟혀 편하게 눈을 감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상봉할 때 혹시 형이 부모 얼굴을 잊었을까 하는 노파심에 가족사진 여러 장을 준비했다. 추운 북한 땅에서 따뜻하게 지내라고 옷과 생필품도 챙겼다. 이회근 기자


    [사진설명]  거제시 장목면 박양곤(오른쪽) 씨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42년 만에 상봉한 형 양수 씨를 만나 머리를 맞대고 오열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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