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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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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제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의료정책- 박동현(희연병원 명예병원장)

  • 기사입력 : 2014-03-1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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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생명과 그 존엄성을 최고의 선으로 추구하는 의료의 본령이 경제논리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의료서비스는 생산품을 돈으로 환산되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인간존엄의 가치라는 것이 인식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진일보할 수 있다.

    동네 병원들의 폐업, 의사들의 개인 파산 얘기가 오래전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파산위기에 처해 자살하는 심약한 의사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눈 딱 감고 편법을 사용하거나, 양심적인 진료보다 마케팅과 호객행위에 집중하는 소위 ‘스마트한(?)’ 일부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개업 의사들이 버텨내질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병원의 영리활동을 허용하고 원격진료를 허용한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는 의사들에게 적잖은 충격과 의료계의 반발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당면한 의료계의 문제점은 ‘건강보험제도의 비정상’에 있는데 해법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공단의 낭비성, 심사평가원의 비전문적인 횡포, 건강보험료 부과와 징수문제점 그리고 비합리적인 의료수가의 문제점들을 올바르게 짚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없이 민영화, 원격진료라는 위험천만한 꼼수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뿔싸!’ 탄식을 하게 된 사건이 매스컴을 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전 국민 ‘무상의료 천국’을 자랑하는 영국의 한 종합병원에서 벌어진 부실진료에 따른 집단 사망사태가 그것이다. 국가보험이 요구하는 기준을 무리하게 맞추고 주어진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의료진 150명을 구조조정함으로써 450병상 종합병원에서 3년간 무려 1200여 명의 환자가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인지된 사건이다. 영국총리는 ‘영국의료제도의 끔찍한 실패’라고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영국의료제도의 재검토를 천명했다.

    값싼 의료의 가장 큰 맹점 중의 하나는 필요 이상으로 의료서비스의 ‘가수요’를 필연적으로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의료서비스의 합리성보다는 그것의 공급과 분배만을 중시하다 보니 의료의 질적인 측면은 거의 무시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의료현실이다.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강요와 희생은 반드시 그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관계당국은 직시해야 한다.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책정돼 지불되는 진료비는 진료원가의 75%라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에도 정부당국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심장들이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동네 병·의원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분만실, 응급실, 중환자실이 문을 닫고 있다. 황당해하는 의사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계당국자는 딴죽만 걸고 있을 뿐이다.

    의료의 민영화, 영리화로 병원 1km 내에 메디텔 건립 가능, 의료관광으로 일자리가 크게 늘 것이라고 위정자들은 호언하고 있다. 의료의 본질을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재벌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재벌들의 의료기관에서 월급을 받는 의사는 어떤 시술을 할 때 환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술로 얼마의 수익이 나올지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의료서비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은 지구상에서 최고의 1등 국가 미국 대통령조차도 부러워할 만큼 잘 굴러가고 있지 않는가라는 편의적인 생각을 관계당국이 가지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영국과 같은 공짜진료, 전 국민 무상의료제도의 맹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안도하고 있는 위정자들의 이면에서 묵묵히 환자진료에 임하고 있는 의사들의 희생을 일반 국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의사들의 자존심과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와 있다는 점을 관계당국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박동현 희연병원 명예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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