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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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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피라미드 일꾼들, 왜 양파를 즐겼나- 이상목(경제부 부장)

  • 기사입력 : 2014-04-1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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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 주변에 군것질거리가 충분해진 것은 불과 십수 년 전부터다. 50대가 넘은 어른들이 어릴 적에는 생쌀을 씹어 먹거나 텃밭에서 자란 가지, 솜으로 성숙되기 전의 여린 목화, 고구마 따위가 고작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척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이 궁했기에 헛간에 걸어둔 양파도 훌륭한 군것질 사냥감이었다. 껍질을 벗긴 후 흰 속살 한 조각을 입에 물면 그 달콤함은 이내 매운 맛으로 바뀌지만 허기를 달래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양파를 생으로 먹으라고 하면 기겁을 할 일이지만 필자는 요즘도 그 특유의 개운함 때문에 꽤 즐기는 편이다.

    문헌에 따르면 양파는 기원전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식용으로 널리 애용됐다. 중세엔 유럽 전역에서, 1900년대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배됐다. 양파의 유효 성분은 150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매일 먹으면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독특한 냄새의 원인이기도 한 황화아릴(allyl)은 암 예방의 대표적 성분이다. 눈물을 쏟게 하는 이 성분은 비타민B1의 체내 흡수를 높이는 작용을 해 불안해소, 신진대사 촉진, 피로회복, 콜레스테롤 억제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페쿠친과 글루타치온, 케르세틴, 플라보S노이드 등의 성분도 풍부해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예방 효능도 뛰어나다. 이 성분들을 많이 섭취하기 위해선 생으로 먹는 게 좋다.

    양파에 얽힌 전설도 많다.

    기원전 3000년 전후 이집트에서 지배층 무덤으로 피라미드를 많이 건설했다. 이 당시 동원된 일꾼들이 즐겨 찾은 식재료의 80% 이상이 바로 양파였다고 전해진다. 피라미드에서 나온 상형문자에 의하면 일꾼들은 양파가 공급되지 않는 날에는 파업을 불사할 정도로 야단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부터 양파의 만병통치 효능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또 지난 1919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400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도 양파는 ‘메시아’였다. 당시 한 의사가 스페인독감을 극복할 묘방을 찾아 각지를 순례했는데 한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와중에도 건강을 유지했던 가족을 만났다. 배경을 알아보니 양파가 있었다. 이 가족은 거주하는 방 곳곳에 껍질을 까지 않은 양파를 놓아 두었고, 그 때문인지 독감에 걸리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방안에 있던 양파를 수거해 상관성을 연구했고, 수많은 독감바이러스가 죽어 있다는 사실을 현미경으로 확인했다. 양파의 항균작용이 입증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전국적으로 양파 작황이 좋아 재배 농업인들이 판로를 못 찾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생산된 양파는 경남 37만9299t을 포함해 총 129만4000t으로 예년보다 훨씬 많다. 이달 현재 전국의 양파 저장량은 지난해 동기보다 64%나 많은 8만3000t에 이른다. 이는 수요보다 2만t가량이 초과하는 양이다. 여기다 제주산 조생양파까지 열흘 정도 빨리 출하되면서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공산품이라면 창고에 재고로 쌓아두면 될 일이지만 농산물이니 그것도 안 된다.

    ‘흔하면 귀한 줄 모른다’고 물과 공기가 그렇고, 작금의 양파 신세 또한 마찬가지다. 도시민들이 양파를 매일 먹어 건강도 다지면서 농업인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상목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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