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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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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어느 화가(畵家) 이야기- 이문재(문화체육부 부장)

  • 기사입력 : 2014-10-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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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미술계에 깜짝 놀랄 만한 경사(慶事)가 났다. 개인전에 내걸었던 작품이 모두 팔렸다. 홈쇼핑에서나 들어봤던 ‘솔드아웃(Sold out:완전 판매)’을 기록한 것이다. 그것도 유치작가의 작품을 팔기 위해 전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상업화랑이 아닌 비영리 갤러리에서 생긴 일이다. 기분 좋은 ‘솔드아웃’의 주인공은 지난 한 달간 창원 the큰병원 숲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던 서양화가 윤형근 작가다. 그림은 스무 점에 가까웠다. 윤 작가는 4년여간 창작활동을 접었다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작가 자신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분명 큰 사건이다.

    요즘 지역 미술시장은 춥다. 큰 맘 먹고 개인전을 열어도 한두 점 팔기가 쉽지 않다. 물감이나 액자값도 건지지 못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전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신 그룹전이나 아트페어에 간간이 참여해 전시 갈증을 풀고 있는 형편이다. 윤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미술시장,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딸 수 있었을까.

    작가는 학창시절 천재(天才)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 정확히는 천재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개막식 날 창원대 명예교수인 작가의 스승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단연 돋보이는 학생이었다. 이론도 실기도 탄탄해 앞날이 촉망되었던 제자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지역미술계는 그를 주목했고, 기대 또한 컸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역할이나 활동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작가 자신도 ‘작가로서 그다지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니라 전시 결과를 떠벌리기가 부담스럽다. 내가 잘나서라기보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발 비켜앉았다.

    작가가 어떻게 살아왔든, 지역의 미술인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회화 1세대가 거의 작고하거나, 붓을 놓은 터라 지역 미술의 자존감(自存感)을 세울 그 누군가가 절실한 터였다. 그래서 작가의 이번 전시는 작가 스스로도, 지역 미술계에도 큰 의미를 지녔다. 이런 부담에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의 붓도 좀체 진도를 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스스로를 추스르고, 주변의 응원과 충고 끝에 새로운 패턴의 작품인 ‘우주(Cosmos)’ 연작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재의 재기(再起)’에 지인들과 제자들, 또 갤러리도 있는 힘을 다 보탰다. 어둡고 습한 터널을 막 빠져나온 작가에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지역 미술의 앞날을 걱정해서이기도 했다. 만약 이번 작가의 용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관심을 쏟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작가는 다시 터널로 향했을 것이고, 지역 미술계의 발전도 제자리를 맴돌지 않았을까.

    작가의 이번 전시 결과는 앞선 의미들과 함께 지역 미술인들이 새겨야 할 메시지도 남겼다. 한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어떤 작가라도 자신의 혼을 담은 작품을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잘 도출해 낸다면 지방이라도 미술품 애호가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치열한 작가 정신만이 화가로서 살아남고 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형근 작가의 ‘솔드아웃’이, ‘지역에서는 아무리 해도 안 돼’가 아니라, ‘치열하게 살면 언제가는,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고 주목해 줄 것이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는 모티프가 됐으면 한다.

    이문재 문화체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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