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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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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적도 부근 필리핀에서의 삶의 흔적…

고독도, 소망도 詩가 되어 날아오다
경남신문 신춘문예 출신 정선호 시인
필리핀서 머무르며 ‘세온도를 그리다’ 두 번째 시집 펴내

  • 기사입력 : 2014-11-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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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에서 그림 한 점이 왔다. 여행자도 이민자도 아닌 사람이 야자나무 아래서 그려 바람에 실어보낸 것이다.

    경남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정선호 시인이 필리핀에서 머무르며 쓴 시 가운데 60편을 골라 두 번째 시집 ‘세온도를 그리다(푸른사상)’를 냈다.

    제목이 된 시는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에서 따 온 것. 세한도는 제주도로 유배된 김정희에게 중국의 귀한 책들을 구해 보내다 준 벗에게 보낸 그림이다. 자신의 외로운 처지와, 벗의 의리를 집에 기댄 소나무 하나와 잣나무 몇 그루로 스산하게 그렸다.

    홀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적도 부근에서 5년 넘게 살고 있는 정 시인은 세한도 대신 망고나무와 필리핀 전통가옥이 서 있는 ‘세온도’를 붓질했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시들은 대부분 세온시다.

    직장 때문에 온 것이라 이 유배는 자발적이다. 남 탓 할 수 없어 더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고독’과 ‘섬’을 인정하며 조국과 시인 스스로의 변천사를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시간으로 삼았다. 가까울 때보다 멀리서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정 시인은 과거를 보고 후회와 원망에 그치지 않았다. 적도 부근에서 발생하는 태풍에 평화와 안녕의 메시지를 담아 보내기도 하면서 이 섬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사는 곳’으로 바꿔나가기를 소망한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 필리핀에 동질감을 느꼈고, 아시아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이들의 행복을 바랐다.

    <<추사가 그림의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기개를 바랐으나, 난 열매 맺어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게 주는 나무들의 풍요로움을 간절히 원했다.>> -‘세온도를 그리며’ 일부.

    부단히 자기성찰을 한 사람이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삶의 터전을 돌아보고 염려하는 것으로 나아간 지점이다. 그가 있는 곳만큼 뜨거운 마음이다. 해설을 쓴 고명철 시인은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이방의 삶을 성실히 살고 있는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상한다”고 했다.

    정 시인은 충남 서천 출신으로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돼 등단했으며, 시집 ‘내 몸속의 지구’가 있다.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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