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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화마가 삼킨 백년해로- 손현호(경남소방본부 예방대응과 예방지도담당)

  • 기사입력 : 2014-11-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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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9월의 어느 날,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거주자 2명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연 없는 사고가 없겠지만 이 화재는 아직까지 필자의 마음속에 아픔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사고였다.

    화재 발생 개요는 다음과 같다. 90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살고 있는 주택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오후 2시경이었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불이 난 것을 발견하고 거동이 불편한 부인을 구조하기 위해서 주택 내부로 들어갔지만 화상을 입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후 이웃에 의해 화재신고가 됐고 두 노인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할아버지는 화재 다음 날 운명을 달리하셨다.

    화재로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은 대부분 극심한 공포와 당황 속에 빠져 이성적 판단이 불가하고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만 몰입하게 된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마저 극복한 채 90의 노구로 불속에 뛰어들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회학자가 아닌 소방관의 시각에서 볼 때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는 노부부의 외로움이 남은 인생을 위로하며 함께할 유일한 벗인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 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것이 부모를 둔 자녀로서 필자가 마음 아파했던 이유이다.

    그리고 소방관으로서 아쉬웠던 점은 이 주택에 기초소방시설을 설치했더라면 하는 것이다. 기초소방시설은 화재 감지와 경보 기능을 동시에 가진 단독경보형감지기와 소화기를 말한다. 약 3만원 정도에 불과한 시설이지만 화재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고, 아마도 두 분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백년해로는 화마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지만 영원한 사랑으로 남았고, 행복을 지키는 것도 행복하게 사는 한 방법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행복을 키울 수는 없지만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소방시설의 역할이다. 소방시설 투자에 인색하지 말자.

    손현호 경남소방본부 예방대응과  예방지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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