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찬밥을 나누고
귤 한 봉지 둘레로
모여 앉은 식구들
미끄러운 세월의 껍질
한 겹씩 벗겨내면
열 조각으로 나뉘는
이 시린 겨울밤은 깊어가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둥글게 모여 앉은 식구들이
어둠의 각질을 뚫고 퍼져나가
저마다 푸른 잎사귀 펄럭일 때까지
제 몫의 오래 익은 사랑 나눌 때까지
☞ 이 세상에서 가족 사랑만큼 오래 숙성된 사랑이 또 있을까요? 고칠 수도, 바꿀 수도, 무를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이 절체절명의 관계 구도. 그래서 우리에게 ‘식구(食口)’라는 말은 가슴에 저릿저릿한 단어입니다.
힘겹게 하루를 살아내고 돌아온 식구들이 늦은 저녁밥상을 물리고 귤 한 봉지 둘레로 빙 둘러앉아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인 화자(話者)가 귤껍질을 벗기다가 문득 발견합니다. 늦은 저녁으로 찬밥을 나눠 먹었듯이, 나눠 먹기에 마침맞게 열 조각 나 있는 귤 알맹이의 모습을요. ‘식구’라는 자각이 더엉~, 가슴의 북을 울리는 찰나겠지요. 그와 함께 이 춥고 어두운 시절이 어서 지나가서 훗날 추억거리로 나눠질 그날을 소망해봅니다. 오래 익어서 충분히 맛이 든, 즉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는 아픔, 연민, 혹은 용서 같은 그 나눔 말입니다. 조예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