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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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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다발- 정현종

  • 기사입력 : 2015-10-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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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추픽추 산정山頂 갔다 오는 길에

    무슨 일인지 기차가 산중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나는 내렸습니다.

    너덧 살 되었는지

    (저렇게 작은 사람이 있다니!)

    잉카의 소녀 하나가

    저녁 어스름 속에 서 있었습니다.

    항상 씨앗의 숨소리가 들리는

    어스름 속에,

    저 견딜 수 없는 박명 속에,

    꽃다발을 들고, 붙박인 듯이.

    나는 가까이 가서

    (어스름의 장막 속에 그 아이의

    오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보았습니다.

    이럴 때 눈은 우주입니다.

    그 미소의 보석으로 지구는 빛나고

    그 미소의 천진天眞 속에 시냇물 흘러갑니다.

    그 미소 멀리멀리 퍼져나갑니다.

    어스름의 광도光度 속에 퍼져나갑니다.)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2솔을 주고 꽃다발을 받아들었습니다.

    허공의 심장이 팽창하고 있었습니다.

    ☞ 산성비 흠뻑 젖은 도시를 통째로 쥐고 짜면 구정물 바다 하나가 생길 것이다. 벌레 먹은 하늘, 벌레 먹은 땅, 벌레 먹은 지붕들, 벌레 먹은 어른들, 벌레 먹은 아이들…. 벌레 먹은 어른들이 살충제를 들이부어도 아이들 마음에는 구더기가 끓는다. 어디로 갔을까, 장대비를 맞고 뛰어다니던 죽순 같은 아이들은, 굴참나무 구멍에서 갓 꺼낸 새알 같은 아이들은, 날개 달린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였던 아이들은? 퇴적된 시간의 지층 어느 구석에서 화석이 되고 있을까. 여행을 떠난다, 더 가난한 곳으로, 지나간 시간이 아직 숨 쉬는 곳으로. 언덕을 겨우 기어오르는 기차를 타고, 낡은 역마다 오래 쉬어 가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역 어딘가 아이 한 그루 환하게 서 있을 것이다.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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