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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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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주 기자의 영화읽기- 부산행(감독 연상호)

이기심과 갈등 뒤엉킨 ‘부산행’ 어디서 멈출까
칸에서 해외 매체들 호평
한국형 좀비영화로 관심

  • 기사입력 : 2016-07-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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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상영에서 해외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이목을 끈 영화 ‘부산행’(제작 영화사 레드피터·배급 NEW). 총제작비 115억원(순제작비 85억원)을 들인 데다, 신개념 한국형 재난영화 혹은 한국형 좀비영화라는 타이틀로 개봉되면서 흥행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간 외국에서는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럿 등장했고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국내서 좀처럼 보기 힘들던 좀비영화 ‘부산행’은 개봉 5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서울발 부산행 KTX가 출발하기 직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젊은 여자가 탑승한다. 이후 좀비 습격을 받은 기차는 아수라장이 되고 펀드 매니저 석우(공유), 거친 인상과 달리 상냥한 마음을 가진 상화(마동석), 고등학생 야구선수 영국(최우식)은 각각 딸 수안(김수안),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여자친구 진희(안소희)를 구하기 위해, 무섭게 날뛰는 좀비들로 들어찬 열차를 헤쳐 나간다. 과연 이 열차는 목적지인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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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를 표방하지만 여러 영화가 오버랩된다. 폐쇄적인 공간, 기차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설국열차’가 떠오르고, 재난과 바이러스 전파라는 소재를 보면 ‘연가시’와 ‘감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애니메이션으로 탄탄한 내공을 쌓아온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개성으로 이를 타파한다. 연 감독은 그간 영화 ‘돼지의 왕’을 통해 계급의 부조리함을 세상에 외치고, 영화 ‘사이비’에서 진실과 믿음의 이중성을 그려 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과정, 대통령의 안심하라는 대국민 담화 등 다른 영화에서 흔히 봤음직한 얼개와 다르게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과 인간의 이기심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아 꾸려간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데도 정부가 일부 폭도들의 문제라며 곧 해결된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발표하는 장면에서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가 겹쳐 보인다. 국민의 알권리를 기만하는 언론 역시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감독의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닐까? 연 감독은 “시나리오 제작 때가 세월호 사건 무렵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이용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어떤 보편적인 생각들 때문이라고 본다”며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객을 목적지까지 책임지려 고군분투하는 기관사와 사살하라는 명령에도 살아남은 이를 구하는 군인(정부)을 보여주며 일련의 사태들보다는 한결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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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10대 야구부, 노숙자 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의 축소판’ 이미지를 담으려 애쓰면서도 인물에 크게 캐릭터를 부여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많으면 구성은 풍부해지지만 이야기가 분산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중 마동석과 김의성이 눈에 띈다. 마동석은 산만한 덩치에 순정마초 옷을 입혀 최고의 호감형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방패와 야구방망이를 손에 들고 좀비를 물리치는 그에게서 캡틴아메리카의 한국판인 ‘캡틴코리아’의 향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보는 내내 화가 솟구치게 하는 ‘발암 유발자’ 김의성을 악역이라 할 수 있을까. 공포에 사로잡힌, 그저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살아 숨 쉬지 못한 공유의 캐릭터는 아쉽다. 그럼에도 주인공을 바이러스 퇴치나 정부와 맞서는 영웅으로 그리지 않아 자칫 유치해지기 쉬운 재난영화의 덫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가족애를 정면으로 내세운다. 딸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하는 공유의 플래시백에 대해 ‘뜬금 없는 신파’라는 혹평도 있다. 이에 대해 연 감독은 “상업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려 가족애를 강조했다”며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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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닮은 탓인지 외국좀비보다 감염도 빠르고 박력이 넘친다. 덕분에 쏟아지듯 달리는 좀비와 실감나는 컴퓨터그래픽이 보는 내내 시원한 맛을 준다. 또한 아이의 시선을 좇은 카메라 앵글에 어쿠스틱으로 미니멀하면서도 날카로움을 담은 음악은 영화에 풍성함을 더한다.

    감독의 개성있는 연출력, 참신한 소재, 한국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변칙개봉’이다. 공식 개봉일 전 주말 3일 동안 유료시사회를 통해 56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변칙개봉이라는 반칙은 사회의 이중성과 병폐를 보여주겠다는 영화의 진정성을 퇴색시킨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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