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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국제정치의 탁류에 빠진 기후변화- 박형주(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16-11-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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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경쟁자보다 적은 득표수를 얻고도 당선된 경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5번째다. 여러모로 이단아의 풍모를 가진 트럼프는 기후변화에 대한 견해도 독특한데, 중국이 허구의 기후변화 위험을 과장한 배후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 재앙의 과장을 통해 미국 정부의 석탄 사용 감축 정책을 유도해 미국 내의 제조 공장이 문을 닫고 중국으로 이전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음모론은 항상 사람들을 피 끓게 하는 걸까. 기후변화 중국 음모론을 주장한 그의 2012년 트위터 글은 10만 번 이상 공유됐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얘기라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본 장면과 뭔가 흡사하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고어는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대선에서 패배했다. 8년 동안 부통령을 한 검증된 정치인이었고, 인터넷 초기에 미국 전역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데 앞장선 덕에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런 칭호까지 따라다닌다.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닥친 대재앙임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 채택에 주요 역할을 했다.

    부시는 어땠나. 기후변화는 인간이 유발한 것이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가깝다는 시각을 가졌고 미국 내의 석유 시추 확대를 지지했다. 국제공조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앨 고어의 방식이 미국 내 제조업의 위축을 부를 것을 염려한 미국인들 상당수는 부시를 지지했고, 선거인단 간접선거라는 미국의 독특한 대선 방식은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다.

    국가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가 역부족이어서, 세계의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여 국제협약을 체결한 게 1년 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현된 지금은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염려하는 지경이 됐다. 그가 전통적인 제조업의 미국 복귀를 추진할 것은 분명해 보이고 각종 환경규제는 약화될 것 같다. 태양광 발전이나 전기자동차 같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며 테슬라의 충격 같은 신세경(新世景·새로운 세상의 풍경)을 거침없이 보여주던 미국이 아닌가.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한 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해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

    세계의 공장이자 공해유발자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이름으로 불렸던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중이다. 중국 각지의 사막화가 확산되고 서부 산악지대에서 빙하가 녹아내리는 등 기후변화는 신기루가 아니라 실재하는 거대 재앙임을 인식하고 있다. 아직 수도 베이징의 하늘은 뿌옇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를 빠르게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등 강력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2030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총량의 감축을 추진 중이다. 미국인 한 명이 연평균 17.6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중국인 평균은 아직 6.2t에 불과하다.

    유네스코는 2013년을 ‘MPE의 해’(Year of Mathematics of Planet Earth)로 선포했다. ‘지구를 위한 수학’의 해라는 뜻이다. 실험이 힘든 기후변화 연구의 특성 때문에 축적된 방대한 기후변화 데이터를 활용한 수학적 접근을 통해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책으로 구현 가능한 대응책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후변화 문제와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수학자들이 있다. 알파고 스타일의 데이터 관점 접근도 있고 미분방정식을 사용하는 기후변화 모델링 접근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내년도에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수학’을 주요 연구주제로 설정하고 해양과기연과 극지연구소 및 지질자원연구원과 협력연구를 계획 중이다.

    위기가 기회다. 미국이 멈칫하는 시기를 우리는 연구력을 보완해서 주도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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