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의 말에서 유래됐다. 자공이 정치에 관해 물었다. 공자가 말하길 그것은 경제(足食), 군사(足兵), 백성들의 신뢰(民信之)라고 답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어떤 순서대로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첫째로 군사를, 다음으로 식량을 버리라며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는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했다.
▼‘무신불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다. ‘신뢰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는 정치인 박근혜를 대통령 당선으로 이끈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는 취임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신불립’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신의가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말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겠지만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신의를 잃으면 그 나라가 굳건히 설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총리 시절인 지난해 6월 중국 방문 일정 중 시진핑 주석과 만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 주석이 사드 문제는 어떻게 결정이 되느냐고 묻자 황 총리가 즉답을 하지 않으면서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은 것 같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한국 정부는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 결정을 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전 통보도 하지 않아 중국 입장에서는 외교적으로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중국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은 대가는 혹독하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중국 내 불매 운동이 노골적이고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고, 중국 내 롯데마트 지점이 잇따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자국민의 한국 관광 금지령도 내려져 관광업계와 면세점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외교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신불립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기길 바란다.
양영석 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