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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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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원 기자의 ‘러브위더스’ 동행 취재

상처는 약으로 치료하고 마음은 사람으로 치유되죠
아픔을 견디는 사람들

  • 기사입력 : 2017-11-0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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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남부 최대도시 호찌민의 야경은 저 멀리 국경까지 닿지 못한다. 화려한 네온사인은 국경지대로 내달릴수록 점차 소멸되고, 간격이 먼 가로등만이 그 존재를 대신할 뿐이다. 호찌민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을 내달린 곳에는 떠이닌 성 목바이 마을이 있다. 더 나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베트남 국경지대다. 목바이로 가는 희미한 가로등을 대신하는 건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불빛이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소수, 오토바이가 다수다. 이곳은 우리나라 80년대 농촌 풍경과 닮아있다. 가끔 지나는 버스와 트럭에는 ‘경남덤프’, ‘고속관광’ 따위의 반가운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기원은 따져 물을 수 없지만, 주민들은 한국 이름이 수놓아진 낡은 옷을 입고 있다. 한국에서 생명이 다한 자동차와 옷가지는 목바이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목바이 주민들은 비싸고, 멀어서 아픔을 견뎌낸다. CT 한 번 찍자면 두 달 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한다. 제대로 된 병원에 가려면 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응급 의료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다. 뙤약볕에 습한 날씨, 제 기능을 못하는 상수도 시설은 그들의 아픔을 더 힘겹게 만든다.

    이곳 주민들에게 봉사단체가 손을 내밀었다.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경남지역 의료 봉사단체 ‘러브위더스(LOVE WITH US)’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위해 벌인 세 번째 목바이 의료봉사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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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부터 병원은 수백명의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 10월 26일, 벤카우 병원에 차려진 ‘러브위더스 병원’

    경작지 한가운데 자리한 벤카우 병원은 제법 그럴듯한 의료시설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 안에는 의료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대부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의료기기가 이를 대신했다. 봉사단의 분주한 손길에 벤카우 병원 1층에는 치과, 2층에는 소아과, 외과, 신경외과가 마련됐고, 강당에는 약국이 차려졌다. 약국 앞에는 임시 미용실이 자리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헤어디자이너 2명이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했다.

    이튿날 문을 연 ‘러브위더스 병원’ 입구에는 수백 명의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진료실을 찾은 몇몇 주민들은 의료진을 마주하기에 앞서 신고 있던 신발을 가지런히 벗었다. 언제 병원을 찾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이들은 흰색 페인트로 둘러싸인 공간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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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 치료를 받고 있는 바야뉴원 양.



    ◆ 10월 27일, 열일곱 바야뉴원 이야기

    치과를 찾은 바야뉴원은 의료진 앞에서 수줍게 입을 열었다. 여태껏 버텨낸 게 대견할 정도의 충치 3개가 썩어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치료를 했냐는 질문에 손가락을 하나, 둘씩 접어가더니,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숫자 세기를 포기했다. 치료는 50분이 넘게 이어졌다. 시린 치료를 참느라 발가락을 비비 꼬아댔지만, 수년간 참아온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오늘 받은 치료는 충치 치료와 앞니 때우기. 50분 동안 참은 고통으로 5년은 건강하게 지낼 거란 의료진의 말에 그녀는 안도했다. 고통이 가셨는지 바야뉴원은 봉사단에게 K-POP 스타를 좋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커서 꼭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와서 직장을 얻고 싶다고 소망했다. 영락없는 열일곱 소녀였다.

    ◆ 10월 28일, 다운증후군 장데이뜨이 이야기

    부모의 손을 뿌리치고 앞장서서 진료소로 들어온 장데이뜨이는 대뜸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불룩한 배를 내보였다. 올해 서른 살이지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배 위쪽을 가리키며 뭔가 쿡쿡 찌르고 있다고 소리 질렀다. 배를 가리키던 손가락은 이내 귀로, 목으로, 허리로 위치를 옮겼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증상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다행히 그녀가 가리킨 다른 부위들은 별 이상이 없었지만, 비정상적으로 부른 배에는 혹이 생겼을 가능성이 컸다. CT를 찍어보면 곧장 알 수 있지만, 벤카우 병원에는 그럴 장비가 없다. CT를 찍으려면 호찌민까지 두 시간을 넘게 가야 한다. 거리는 차치하더라도 비용이 천만 동으로, 두 달 치 임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탓에 장데이뜨이의 부모는 쉽게 나서지 못한다. 의료진은 소화 불량으로 부른 배였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부른 배를 다시 한 번 어루만졌다. 그녀는 소화 촉진제와 비타민을 들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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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를 잘 탄다는 탄마이.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다리를 치료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10월 29일, 오토바이 소녀 탄마이 이야기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탄다고 자랑하던 탄마이(28)는 왼쪽 바지춤을 올리면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철심을 박았고, 한 달 전 이를 제거하고서 상처 부위를 기웠다. 길가에서 벼락같이 덤벼든 소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탄마이는 병원이 멀리 있는 탓에 소독 한 번 하지 않고 한 달을 버텼다. 붕대를 제거하자 40㎝가량의 상처가 드러났고, 촘촘한 스테이플이 모로 박혀 있었다. 조금 아프다는 의료진의 경고에 참아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녀는 스테이플을 제거하는 의료진의 손길을 의연하게 지켜봤다. 한 달간 붕대에 갇혔던 다리의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탄마이는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길게 이어진 상처가 흉질까봐서다. 성형수술을 권했지만 탄마이는 비싸서 엄두가 안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의료진은 흉터가 덜 남는 습윤 드레싱제를 손에 쥐여줬다. 그녀는 기자에게 닥터가 한국말로 뭐냐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의료진에게 “의사 감사해요”라는 서툰 한국어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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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환경이 만들어 내는 질환

    의료진은 3일 동안 180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주민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손등과 발등, 무릎과 허리가 아프다는 관절통이다. 분신처럼 여기는 오토바이는 그들을 어디든 데려다주지만, 구부정한 운전 자세는 서서히 그들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1년 4모작인 힘든 농사일도 관절을 악화시키는 원인이었다. 당뇨가 뒤를 이었다. 밥을 굶고 온 주민이 대부분이지만, 혈당값은 정상치의 3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병원에 가지 않으니 관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르는 만큼, 건강은 서서히 악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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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 초등학교에서 펼쳐진 ‘붐바스틱’ 댄스 공연.



    ◆목바이에 울려 퍼진 아리랑과 붐바스틱

    봉사에는 레크리에이션팀도 함께했다. 4개월 전부터 춤과 노래를 준비했고, 주민들에게 줄 선물을 직접 마련했다. 낮 진료를 마친 봉사단은 숙소로 이동해 늦은 밤까지 아이들에게 줄 고깔모자를 만들었고, 삼삼오오 모여 춤사위를 연습했다. 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에 피엔투언 A·B·C 초등학교 학생 23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리랑 공연과 태권도 시범, 플루트 연주를 보며 서로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졌다. 봉사단이 ‘붐바스틱’ 댄스를 선보이자 아이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제되지 않은 춤 실력을 자랑했다. 마지막 날 병원 강당에서도 ‘붐바스틱’ 댄스는 이어졌다. 목바이에서 봉사단과 아이들은 한데 섞여 같은 춤을 췄다. 열한 번째 해외 봉사 활동이지만 이번처럼 짜릿한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봉사단은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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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원 기자



    ◆또 오겠다는 약속

    경상남도의사회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비영리 민간봉사단체 ‘러브위더스’의 해외 의료봉사는 올해로 열한 번째, 목바이는 세 번째 방문이다. 4박5일의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주민들은 봉사단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다. 마이데이따흐 할머니는 3년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봉사단과 마주했다. 달라진 것은 이마에 늘어난 주름뿐이었다. 봉사단은 주민뿐만 아니라 벤카우 현 관계자, 현지 의료진들과 만나 인적·기술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목바이에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는 날까지 봉사단은 현지 방문을 이어간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그들이 봉사단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목바이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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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 디자이너 봉사자들이 주민들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이번 의료봉사에는 창원파티마병원 마상혁·장내성·최영준, 미소사랑치과의원 전재훈 등 의사 4명과 대합가나약국 이재연, 진해 세명약국 김민지, 마산 행복한약국 김정혜 등 약사 3명, 창원파티마병원 하정하 외 4명·창녕우리병원 최은정 등 간호사 6명, 미용사 박수윤 송은정 등 2명, 자원봉사자 23명 등 총 38명이 참여했다.

    글·사진=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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