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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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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역사에 남아야 할 이름- 김경영(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19-04-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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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경남의 항일독립운동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창원시는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성평등 의지를 알리는 장미꽃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지역 여성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기념 특강을 개최했다. 이날 특강을 통해 우리 지역의 일제강점기의 여성의 날과 여성 항일운동 등을 알 수 있었다.

    마산에서 1926년에 ‘여성의 날’(당시는 국제부인데이)을 기념했는데 ‘세계 여성의 날’이 시작된 지 불과 18년 지난 때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5000여 섬유산업 여성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빵(노동권)과 장미(선거권)를 요구하며 투쟁한 이날 사망자도 발생했다. 이후 여성들의 투쟁은 지속됐고 마침내 UN에서는 1975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채택했고, 2018년 한국에서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마산·창원지역 여성들의 항일독립운동도 활발했다. 여성들은 1907년 창원마산항 국채보상회의연소, 창원항국채보상부인회의, 구읍(창원 중동, 북동, 소답동) 부인회 등 적극 참여했지만 그 이름을 찾기 어렵다.

    만세독립운동에 참여한 마산, 웅천 여성들도 있었다. 1919년 3월 마산 의신여학교 학생 최봉선, 안음전, 김남준, 이수학 등 22명은 ‘결사단’을 조직해 태극기와 격문을 만들어 시위를 준비하고 3월 21일 구마산 장날에 3000여 군중들과 독립만세를 벌였다. 교사 박순천 (의신여학교)은 독립만세운동, 교사 양한나는 동맹휴학을 조직했다.

    웅천에서는 주기선, 김조이, 주녕옥 등이 4월 3일 웅동면 연합시위를 위해 웅천교회에서 여성들만의 시위를 계획했다.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한 김명시는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렸는데 마산 오동동 문화광장 옆 생가터에는 표지석조차 없다.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은 제대로 역사에 남겨지지 않았다. 유관순 또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누나’로 불렸다.

    3·1운동 100년을 맞이해 창원시와 경남도는 항일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제 경남여성들의 항일독립운동도 제대로 정리해 역사화하기를 바란다.

    김경영 (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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