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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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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른다운 어른- 천종호(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 기사입력 : 2021-05-25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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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고, 청소년들과 청년들 중에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매우 높고, 결혼해도 출산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은 이제 누구라도 아는 바이다. 그들이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는 것이다. 요양병원에는 환자들이 꽉 차 있고 길거리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시대적 상황 앞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2010년 2월에 창원지방법원에 부임하여 그로부터 3년간 소년재판을 담당했다. 비행의 정도가 경미하여 사회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가정 해체 등으로 인한 보호력의 약화로 재비행 가능성이 매우 높은 아이들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 2010년 11월 비행청소년 전용 대안 가정인 청소년회복센터를 창안하여 소년재판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소년회복센터가 시작될 당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적 근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예산이 지급되지 않는 상황이라 청소년회복센터의 운영자들은 대안 가정의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이 제정되고 예산이 지급되어야 했으나 비행 청소년들을 향한 사회의 편견과 냉대가 심하여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특히, 당시 경남신문의 정기홍 국장, 전강용, 김진호 기자의 도움은 청소년회복센터에 관한 법이 개정되고 청소년회복센터의 운영자가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급받도록 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됐다. 이들은 필자가 경남신문에 수개월 동안 소년재판 사례를 연재할 수 있게 하여 비행소년들의 실상을 알릴 수 있도록 해주고, 필자의 사소한 행적들을 박스 기사에 담아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한 아이라도 더 건져보겠다며 경남 일대를 누비고 다니는 판사를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마중물이 되어 경남도민들을 비롯한 전국의 시민들은 서서히 비행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과 냉대를 거두어 나갔고, 결국에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게 됐다.

    청소년회복센터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아이들을 비행에서 벗어나게 했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던 아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히게 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사회에 끼친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들을 이루게 하고 청소년회복센터 관련 법률의 개정과 예산 통과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저변에 어른다운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비행 청소년들을 왜 도와주느냐고, 그냥 교도소나 소년원에 집어넣어 버리라고 악쓰는 사람들이 많은 중에 비난을 무릅쓰고 아이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마음에서 시골의 무명의 판사를 도와주신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행 청소년 외에도 학대아동, 지역아동센터나 보육원 소속 아동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동들이 아주 많다. 이 아이들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아이들이고 미래의 주역이 될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조차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다면 누가 이 땅에서 아이들을 출산하고자 하겠는가? 내 주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없는지 살뜰히 둘러보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천종호(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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