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6월 23일 (일)
전체메뉴

[작가칼럼] 당신의 독서가 실패했던 이유- 희석(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 기사입력 : 2024-01-18 19:19:50
  •   

  • 출판사들의 연 매출이 가장 높을 때는 언제일까. 출판사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입을 모아 말하는 달이 있다. 바로 1월. 새해를 맞아 ‘올해는 반드시 독서를!’과 같은 다짐으로 서점을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매출이 조금은 나아진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순 없다. 1월만 지나면 늘 그랬듯 판매량은 뚝뚝 떨어진다.

    요즘 누가 책을 읽느냐는 말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시대다. 출판사 대표라는 나조차 동의할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책을 안 읽을까. 유튜브가 대세라서? 넷플릭스가 훨씬 재밌어서? 영상과 음악 산업이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에? 모두 일견 맞는 말이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책’을 ‘유희거리’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문화 때문일 것이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어보자. 무엇을 볼지 한 시간째 고민하다가 결정한 콘텐츠가 생각보다 재미가 없을 때가 있다. 그럼 우리는 과감하게 종료하고 새 콘텐츠를 고른다. 시리즈물을 볼 때는 질린다 싶으면 다른 시리즈로 넘어가서 정주행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유튜브도, 음악도 마찬가지. 이것저것 보고 듣고 즐기다가 끝까지 가는 경우가 있고, 결말이나 클라이맥스를 모른 채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책은, 책만큼은 이게 허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책을 쌓아두고 읽는 독자가 아닌 이상 대개 비슷할 것이다. 이른바 ‘완독’이라는 압박 속에 아무리 재미없더라도 끝까지 읽어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이 영상 저 영상 넘어가며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 책 저 책 넘어가며 보는 것은 꼭 내가 ‘진득하지 않은 독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결국, 책은 유희거리가 아니라 ‘도전’이 되어버렸고, 한국 독서율은 세계 평균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 이건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가 크다. ‘책이란 자고로 이러해야 한다’라는 틀을 규정하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은 ‘진정한 독서’가 아니라는 핀잔을 어릴 때부터 들으며 자라는 게 우리다. 지금도 당장 눈앞에 만화책 삼매경인 초등학생이 있으면 ‘그런 거 보면 공부 안 된다’라고 훈계할 어른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만화책을 금지당한 어린이가 책 읽는 어른으로 자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어릴 때부터 독서 취향을 강매당하는 탓에 내가 어떤 텍스트를 좋아하는지 스스로 알 수 없게 돼 책과 먼 삶을 살게 된다.

    책을 너무 신성시하고 무겁게 여기는 문화 역시 독서율 하락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책은 그냥 책이다. 무슨 말이냐면, 책에서 삶의 진리나 지혜를 반드시 찾을 필요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대단한 철학적 메시지를 찾으려고 ‘오징어 게임’을 보는 게 아니지 않은가. 책도 마찬가지다. 그저 즐기는 게 우선이고, 그 안에서 깨우침을 얻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책에서 매번 무언가 얻으려 할수록 독서는 실패한다. 읽다가 재미있으면 계속 읽는 것이고, 지루하면 덮고 다른 책을 뒤적거려도 괜찮다.

    멀티 콘텐츠의 시대지만, 아날로그 미디어인 책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다. 혹시 이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방법이 있다. 베스트셀러를 외면하고, 서점 서가를 거닐다 ‘느낌’이 오는 책에 과감히 투자해보자. 온전한 내 느낌만으로 선택한 책을 구매한다면 이미 독서는 시작됐다. ‘독서’는 완독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만 권의 책 속에서 내가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독서다. 올해엔 당신만의 독서가 시작되길 바란다.

    희석(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