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난리 마을.들녘 시름이 떠다녔다
- 기사입력 : 2002-08-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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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한림면
젖소와 돼지 닭 등 가축들이 물 난리로 가혹한 수난을 당하고 있다.
고립된지 4일째인 13일 물에 잠긴 우리는 탈출했지만 사람들은 온데 간
데 없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여기저기서 울부 짖었다.
젖소들은 풀이 있어 배 고픔은 참지만 풍선처럼 불어난 젖을 감당하지 못
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매일 젖을 짜야 하는데 4일째 아무도 돌보지 않자 한 아름 되는 젖 때문
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돼지와 닭은 사람들이 모두 가버리자 인근 산으로 들로 이리 저리 나다
녀 보지만 먹을 것이라곤 찾기 어렵다.
한림면 침수로 축산농가 20호가 물에 잠겼다. 이로 인해 가축 수천마리
가 대부분 달아나 저 혼자 헤매다 쓰러지고 있다.
농민들은 물이 밀려오자 일단 가축 우리의 문을 열어 주고 안전지대로 피
신했다.
소방서의 고무보트를 타고 이따금씩 와 보지만 가축을 위한 대책은 없어
속수무책이라 눈물만 흘리다 돌아간다.
한 농민은 『같은 식구처럼 지내는 생명인데 저렇게 배를 굶주리게 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도록 마음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젖소 농가들은 온갖 묘안을 내다 해발 200m의 봉화산을 넘어 이동시키기
로 작정한다.
13일 오전부터 우리에 갇혀 있던 젖소를 몰고 산을 넘기 시작했다.
젖소 45마리를 기르는 장세영(47)씨는 『5~7마리씩 무리를 지어 이웃 주
민들의 도움을 받아 해발 100m를 오르는데 이미 두마리가 쓰러졌다』며 눈
시울을 적셨다.
산을 넘은 젖소는 군 부대의 수송 차량 도움을 받아 인근 빈 농가에 임시
로 옮겨지고 있다.
젖소 농가들은 이같이 발버둥이라도 쳐 보지만 돼지와 닭을 사육하는 농
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한숨만 내쉬고 있다.
죄없는 가축들이 물 바다를 보며 누군가를 향해 울부짖고 있다. 김해=김
상우기자 kimsw@knnews.co.kr
#함안 법수면
황톳물 바다다. 함안군 법수면 백산제방 인근 마을과 논밭이 황톳물 바다
밑에 잠겨 있다. 붕괴된지 4일째인 13일 전주와 일부 지붕만이 붉은 황톳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 이곳이 이번 호우로 침수된 백산·대송·우거·사
정 등 4개리 6개마을 일대 100여가구 주민들의 삶의 터전임을 알려준다.
보트로 가로질러 찾아간 대평마을 입구 축사에는 죽은지 4일째인 수백마
리의 돼지들이 사지를 하늘로 향해 죽은 채 황톳물 위로 둥둥 떠 썩어가고
있다. 가재도구와 책가방 등 집안에 있어야 할 대부분의 물건들이 떠다니
고 있다.
백산제방을 수마(水魔)의 방어막으로 삼아 대대손손 삶의 터전을 가꿔온
주민들이 호우로 모든 것을 잃었다.
1만여평 벼논이 잠긴 이 마을 주민 배종성(59)씨. 그는 『한해 농사를
잘 지어야 대출금도 갚고 자식들 학자금도 마련하는데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은 들판을 바라보니 눈물만 나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4㎞에 이르는 황톳물 바다에서는 고립된 주민들에게 식수와 음식물을 나
르기 위해 소방대원들이 탄 보트가 분주하게 오갔다.
우거리로 돌아오자 주민들이 제방의 붕괴가 공사부실과 늑장대처 때문이
라며 당국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백산제방이 이보다 낮았던 때도 침수피해를 당하지 않았는데 수십억원
을 들여 보강공사를 어떻게 했길래 문전옥답 320여ha와 100여가구의 가옥
이 물에 잠긴단 말입니까』
오후 3시. 비가 그치자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 1천여명이 응급복구작업
에 나섰다.
돼지 4천여마리중 3천여마리가 익사했다는 대송리 대평마을 은정축산(대
표 노주호)에는 군부대 장병 100여명의 도움으로 건져올린 돼지 1천여마리
를 산으로 몰아 1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또 함안축협 직
원 20여명은 건져올린 돼지들에게 먹일 사료를 보트에 실어 운반하느라 비
지땀을 흘리고 있다.
창원보호관찰소 조모(17)·김모(17)군 등 21명은 우거리일대 음식점과 상
가의 각종 비품을 꺼내 말리고 물로 깨끗이 씻고 있다.
한전 직원들의 노력으로 6개마을중 물이 빠진 우거리 등 일부는 이날 저
녁부터 전등불이 켜지고 전화도 일부 개통됐다.
군북농협은 시름에 빠진 주민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20㎏들이 쌀 100포대
를, 함안중앙병원은 라면과 빵을 전달하는 등 온정의 손길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물이 빠지는 데는 1주일 이상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여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의 고통은 앞으로도 얼마동안 계속될 지 알 수 없었다. 함안=배
성호기자 bae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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