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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투표, 글쎄올시다

  • 기사입력 : 2006-04-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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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선거벽보가 나붙지 않아 속단할 순 없으나 밑바닥 동향을 살펴보면 이번 5.31일 지방선거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 같다. 얼마전 한 모임에서 찍을 만한 인물이 없는데 어찌하면 좋으냐는 푸념을 들었다. 대형빌딩 등에 내걸린 예비후보들의 신수는 훤해 보이는데 속속들이 알 수도 없고 때빼고 광낸 모습이 엇비슷해 그렇고 그렇다는 것이다.

      또 정당은 A당을 지지하는데 공천자가 영 내키지 않고 B당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후보는 꽤 믿음직스럽게 보인다는 경우도 선택이 쉽지 않다. 이런 물음은 도처에서 나올 만하다. 적당히 둘러댈 말도 궁하고 듣고 있자니 난감하다. 그렇다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라고 했다간 ‘너 잘났다’고 핀잔듣기 딱 알맞다. 차라리 포기하라고 적극적으로 종용했다간 선거방해로 몰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이같은 질문이 나온다는 건 투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선거구가 새로 획정된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선거구가 어딘지 모르는 이들도 허다하다. 도지사나 시장·군수 후보중엔 귀에 익은 이름이 있긴 한데 도의원이나 시·군의원은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다 보니 아예 관심밖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비례대표의원까지 뽑아야 하기 때문에 투표용지가 6장이고 6번 ‘붓두껍’을 눌러야 국민된 도리를 다한다. 작고한 한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면 ‘투표부역’이나 다름없다. 용지 색깔도 연두색. 밝은 노란색. 연한 노란색. 흰색. 청회색. 하늘색 등 눈이 침침할 정도다. 가뜩이나 정치판이 어지럽고.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시쳇말로 신경 끄는게 낫다는 부류가 적지 않다.


      선거때만 되면 이런 경우를 우려해 유권자들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돌리려는 캠페인성 글들이 쏟아진다. 그중 눈에 띄는게 ‘금쪽같은 한 표론’이다. 단 한 표 때문에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운명을 갈랐다는 얘기다. 언론에 보도됐던 것을 대충 열거하면 수천년전 그리스 종교회의에서 ‘여성이 인간인가 동물인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단 한 표차이로 인간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여성들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직한 일이 발생할 뻔했다고나 할까. 또 믿기 어렵지만 1776년 미국의 국어가 독일어 대신 영어로 채택된 것이나 1923년 아돌프 히틀러가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나찌당을 장악하게 된 것도 한 표 때문이었다. 국내에도 한 표 탓에 당락이 엇갈린 사례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지난 번 6·13지방선거 때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기초의원에 출마한 이강부 후보가 홍일점 하정균 후보를 1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것을 비롯해 서울 원효로2가. 인천 부평4동 등 8개 선거구에서 단 한 표가 운명을 갈랐다. 국회의원 선거로는 경기도 광주에서 문학진 후보(민주당)가 3표차이로 낙선하는 바람에 문세표라는 별명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 표의 가치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글귀가 ‘참 일꾼론’이다. 곳간의 열쇠를 맡기면서 내몰라라 할 수는 없다는 거다. 이번 지방의원은 유급제 도입으로 적지않은 월급을 꼬박꼬박 줘야 하는 판에 내고장 살림살이를 검증없이 맡기다간 들어먹기 십상이다. 4년간 임기가 보장된 ‘계약직’이라 정리해고도 못한다.

      웬만큼 말썽이 나도 자발적으로 그만 두지 않는 한 울며 겨자 먹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주인이 탄 수레를 끌 말이 부실하면 다칠 수 있고. 뒤늦게 외양간을 고치려 들게 아니라 정말 소가 건강한지. 외양간은 튼튼한지 미리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기권도 민주주의 원리상 불신을 표시하는 한 방법이다. 하지만 기권을 해본들 전체 투표율에 영향이 있을 뿐 선거 효력이나 당락과는 무관하다.

      응시한 후보자들 중엔 마땅한 인물이 없더라도 제도가 이러니 달리 어찌 하겠는가. 투표할 땐 외면해 놓고 잘못한다고 통술집에 앉아 고래고래 고함을 칠 순 없는 일이다. 어쨌든 선거일이 한달여 남았지만 작금의 ‘글쎄올시다’ 분위기가 바뀌야 할 텐데 답답하다. 현재로선 교과서대로 투표는 민주국민의 권리요 의무라고 되뇔 수밖에.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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