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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언론의 월드컵 띄우기, 한미FTA 죽이기

  • 기사입력 : 2006-06-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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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의 ‘월드컵 띄우기’. ‘한미FTA 죽이기’

    서익진(경남대 교수)

      드디어 지난 5일 워싱턴에서 한미FTA 본협상이 개시되었고 오늘은 독일 월드컵의 막이 오른다. 우리나라는 태평양 건너 북미 대륙 동쪽 끝에서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 끝에서 세계 최대의 축구제전의 본선 진출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 두 역사적 사건의 동시 진행은 우연이겠지만. 이쯤에서 성격이 전혀 다른 이 두 사건을 대비시켜 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고 본다.

      월드컵은 생사와 무관한 인류 축제의 장이지만. 한미FTA는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경제전장이다. 월드컵은 즐거움. 안타까움. 허탈감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감성적 이벤트이지만. 한미FTA는 명확한 득실 계산. 냉정한 협상자세가 요구되는 이성적 이벤트이다. 월드컵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일시적이거나 길어야 4년이지만. 한미FTA의 영향은 반영구적이다. 월드컵에서의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할 수 있고 4년마다 재격돌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FTA는 국가간 약속으로서 물릴 수도 없고 재협상도 쉽지 않다.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비장감에 가까운 전의를 불태우며 응원하는 국민은 지나칠 정도로 열광하고 있다면. 한미FTA 협상 대표팀은 4대현안의 양보로 상수에게 오히려 4수 접어주고 또 무조건 타결이라는 속내를 상대방에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스스로 협상력을 무디게 만드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고 있어도 협상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국민은 정보의 부족으로 무지와 무심의 경지에 빠져있다.

      월드컵은 거의 모든 국민의 이해가 일치하여 단합의 미덕을 자랑하고 있지만. 한미FTA는 국민을 득실이 상반되는 집단으로 갈라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극렬한 찬반대립까지 조장할 수 있는 분열의 악덕을 감추고 있다.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국민에게 기쁨 아니면 실망을 줄 뿐이지만. 한미FTA 협정의 내용은 국민의 분노와 절망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극과 극을 달린다. 월드컵의 경우. 언론의 월드컵 마케팅은 한마디로 ‘너무 심하네’이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국가대표팀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세히 반복해서 보도하고. 해설과 분석. 예측과 대책 등 온갖 종류의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여기서 월드컵 관련 해외기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방송은 하루 종일 뉴스시간마다 월드컵 소식을 장시간 반복해서 내보내고 나아가 별도의 다양한 월드컵 특집 방송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낸다. 가나와의 평가전은 방송3사가 동시 중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문과 방송을 월드컵으로 도배함으로써 언론은 국민들을 ‘월드컵 박사’로. 그리고 ‘스포츠 국수주의자’로 만들었다. 고작 몇 달 전에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만들었던 것처럼.

      이와는 정반대로. 한미FTA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보면 처음에는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하더니 최근에야 ‘사건’이 일어났으니 사실보도만 어쩔 수 없이 최소한도로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절제되고 신중한 보도 자세는 가급적 비공개리에 속전속결로 추진한다는 정부의 초기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사실 언론이 한미FTA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반대여론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자 정부가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국민을 설득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그리고 본회담 개최가 다가오고 범대위의 미국 원정시위가 실행되면서부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는 뉴스시간에 짧은 사실보도로 그치고 특집은 물론 해설이나 분석도 없다. 간혹 심야토론 프로가 편성되거나 관련 토론회 중계가 있을 뿐이다. 보도 횟수의 양적 측면에서건 보도 내용의 질적 측면에서건 월드컵 보도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닐 수 없다. 이리하여 언론은 국민을 ‘한미FTA 바보’로 그리고 ‘무지한 국제주의자’로 만들고 있다.

      해설과 분석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열광할 수 있는 월드컵은 지면과 시간을 아낌없이 부여하면서. 한미FTA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인색한지 그 저의가 정말 궁금하다. 한미FTA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이는 다수 국민의 능력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자. 그러나 그럴수록. 그리고 그것이 우리 경제와 국민의 생활에 미칠 영향이 월드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한. 정부와 언론은 충분한 양의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월드컵의 과잉보도와 한미FTA의 보도자제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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