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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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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초등학교 반장과 지방의회 의장 - 최영규(경남대 법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06-07-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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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에 다니는 먼 친척 조카뻘 되는 아이가 반장이 되었다고 좋아하기에. “그래. 정말 장하구나. 반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대답이 놀라웠다. “아녜요. 우리 학교에서는 누구든지 한번씩 다 반장해요. 번호순으로 1주일씩 돌아가면서 하거든요.”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어린 시설에. 반장은 막강한 자리였다.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매개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로써. 선생님의 권위를 빌려 수십명의 반 아이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자습시간이면 반장은 선생님 대신 교탁에 서서 누가 떠들고 장난을 치는지 감시했고. 반장이 한번 눈을 치켜뜨면 웬만큼 덩치가 큰 아이들도 움칫하기 마련이었다. 그뿐인가. 조회며 운동회며 그밖에 학생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항상 맨 앞에 섰고. 학년말이면 우등상은 물론. 이런저런 명목의 상을 하나쯤 덤으로 더 받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하여 반장은 모든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리는 하나뿐이고 원하는 아이는 많고…. 그 결과는 치맛바람과 촌지로 대표되는. 우리 교육사의 아픈 상처로 남았다. 물론 반장제도가 치맛바람과 촌지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그 생성과 확산에 크게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전국 지방선거가 끝나고. 지방의회가 일제히 다시 구성되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도 언론은 한동안 또 하나의 선거전을 보도하고 전망하기에 바빴다. 도의회와 각 시·군의회의 의장선거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의장 선거전의 과열과 잡음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의 교황식 선거방식으로는 의장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할 수도 없고 선거전의 과열을 막을 수도 없으므로. 후보 사전등록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거방식의 변경으로 선거전의 과열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다름 아니다. 의장 선거전이 과열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의장 자리는 하나인데 의장이 되고 싶어하는 의원은 많기 때문이고. 의장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까닭은 의장이라는 자리가 명예와 실리를 주기 때문이다. 단체장과 동격의 예우를 받는다는 것이 명예요. 평의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집무실과 비서. 기사 딸린 승용차. 월 기백만원의 판공비가 제공된다는 것이 실리이다. 이러한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이번 의장 선거는 이미 끝났지만. 앞으로 주기적으로 다가올 의장 선거의 과열과 잡음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의장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과분한 명예와 실리를 없애면 된다. 주민은 지방의회 의원을 뽑았을 뿐 단체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을 의장 후보를 뽑은 것이 아니다.

    모든 지방의회 의원은 지방의회 안에서 맡고 있는 소임에 따라 불가피하게 소요되는 실비 변상 외에는 어떤 특별한 예우와 보상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의장이라고 해서 의회의 회의를 주재하고 대외적으로 의회를 대표하며 대내적으로 의회의 사무를 감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의원과 차이가 없다면. 현재와 같은 특별한 대우는 불필요하다. 지방의회 의장이 단체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아야만 지방의회가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식견과 양식을 갖추고 지방행정을 충실히 감시하고 견제할 때 존경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래도 의장의 직무 자체가 명예이고 그러한 명예를 원하는 의원이 많다면. 한 달씩 돌아가면서 맡으면 된다. 어떻게 그런 막중한 자리를 수건 돌리기 하듯 돌아가면서 하느냐고? 스위스에서는 대통령도 의회가 선출한 7명의 각료들이 1년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초등학교 반장도 돌아가면서 하는데 지방의회 의장이라고 순번제로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영규(경남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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